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상(上)과 하(下)’(원제 The Enemy Below)라는 제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중 대서양에서 펼쳐진 미국 구축함(USS 헤인즈 호위구축함)과 독일 잠수함(U-보트)간의 영웅적인 해상 전투를 그린 영화를 기억할 것이다.

이 영화는 1957년에 만들어져 1958년도에 아카데미 특수 효과상을 수상하였고, 미국의 딕 포웰이 감독하고 미국 배우 로버트 미첨과 독일의 전설적인 명배우 쿠르트 유루겐스가 각각 구축함과 잠수함의 함장으로 출연한 최초의 해상 전투 영화로 기억된다.

구축함의 함장으로 첫 항해에 나선 로버트 미첨은 레이더에 포착된 미확인 물체를 추적한다. 특히 항해사 시절 독일의 U-보트에 자신의 배를 잃은 경험이 있는 함장은 집요하게 이 물체를 추적하여 독일의 잠수함임을 확인하고 공격 작전을 수립한다.

한편 독일의 잠수함 역시 자신들을 추적하는 것이 미국 구축함임을 확인하고 어뢰 한발을 발사한다. 구축함은 함선을 급선회하여 이를 벗어난 다음 물속의 잠수함에 폭뢰 세례로 응전하게 된다. 독일 잠수함은 폭뢰를 벗어나기 위하여 허용 한계 수심 이하로 잠행하여 이를 따돌리려 했으나 미 구축함은 이를 놓아주지 않고 줄기차게 추적한다.

독일 잠수함은 기관을 정지하고 재공격의 기회를 엿보다가 제2차 어뢰 공격을 하였다. 이로 인해 심각한 파손을 입게 된 미 구축함의 함장은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퇴함 명령을 내린 후 독일 잠수함에 대한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하여 갑판 곳곳에 방화를 한 후, 독일 잠수함의 부상을 기다렸다.

잠망경으로 구축함이 기능 불능 상태임을 확인한 잠수함은 구축함의 위장전술임을 눈치 채지 못하고 수면위로 부상하여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전에 구축함의 잔여 병력의 이함을 위한 배려로 5분간의 시간을 주겠다고 승자의 여유를 부리지만 구축함 주포의 공격을 받고 잠수함 역시 운항 불능상태가 된다.

현장에 급파된 또 다른 미 함정에 의해 양측 승무원들은 구조되고 특히 함장들은 최선의 전략으로 싸운 결과에 승복하고 상호 존경의 예를 표시하고 침몰하는 구축함과 잠수함의 최후를 보며 경례로 그들의 애함(愛艦)을 떠나보낸다. 물론 제2차 대전 중 미국과 독일은 서로 적으로 대적하고 싸웠고 전력에는 타격을 가했을망정 인명 구조에는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지 않았다.

이 영화 역시 경쟁과 휴먼이 어우러진 멋진 사나이들의 세계를 보여준 영화였다. 이것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사건으로 지난 3월 26일 밤 9시 22분 칠흑 같은 밤에 통상적인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던 722천안함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무도한 집단에 뒤통수를 맞고 두 동강이 난 채 침몰하여 46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수중고혼이 되었다.

현재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의 외국 전문가들도 참여한 민군합동 조사단이 발족되어 조사 중으로 조사과정의 투명성과 조사결과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를 얻고자 노력중이다. 특히 지난 4월30일 한중 정상회담 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평가한다고 하였으니 다행이다.

지금 국민들은 조사 결과에 따라 응징과 보복을 통하여 그 한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보복이 또 다른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을 가져와 그간 우리가 이룩해 놓은 눈부신 경제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혼재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나비의 날개 짓이라도 폭풍우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절제된 정부의 후속조치가 뒤 따라야 하지 않을까?

1995년 제작된 핵잠수함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에는 함장(백인 진 헥크만)과 부함장(흑인 덴젤 워싱톤)간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다. 함장은 ‘군인은 단순해야 하고 명령이 내려오면 즉각 공격하는 것이 군인정신이다’라고 하고, 부함장은 ‘핵 공격은 명령에 대한 재확인과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고 하여 공격론과 신중론이 맞선다.

결과적으로 신중론을 주장한 부함장이 판단이 옳았으나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전쟁에서의 적은 전쟁 그 자체’라는 것으로, 오늘날 많은 군사 전략가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고 하니 이 점 또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중국 역사상 한나라의 장량, 삼국시대의 제갈량과 더불어 춘추전국시대의 지략가로 손무(孫武)를 꼽는다. 손무는 고국인 제(齊)나라를 떠나 자기를 받아준 오(吳)나라의 합려(闔閭)대왕 밑에서 그 뜻을 펼쳤다. 초(楚)나라와 월(越)나라를 상대하는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의 저서 손자병법에 기록하기를 ‘지피지기 백전불태(知?知己 百戰不殆)’라 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손자병법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하고 서해에서의 바다 영토 수호 전략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순국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천안함을 침몰시킨 증거 수집과 실종 장병 수색에 참여하고 어장으로 귀환 도중 불의의 사고로 침몰한 98금양호  선원들에 대한 영결식이 지난 6일 침몰 34일 만에 거행되었다.

늦었지만 이들 9인에 대해  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의사자에 준한 예우, 현충원 안장 그리고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이다. 하루속히 이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인도네시아 선원을 포함한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98금양호 선원들이시여, 이제 이 세상 모든 걱정과 고통을 접으시고 하늘 바다에서 만선의 꿈을 이루 소서 그리고 영면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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