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은 일명 ‘석화’라고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따낸 굴조개 껍질이 바위면에 하얗게 붙어있어서 마치 꽃무더기를 연상하게 한다. 그래서 ‘돌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벗굴과에 속하는 쌍패류를 모두 가리켜 굴이라 한다. 굴은 그 종류가 다양해 모두 합해 대략 20여 종에 달한다.

굴과에 속하는 조개는 고착생활을 하는 장소에 따라 크기가 일정치 않지만 대략 5∼10Cm정도이다. 껍질의 안쪽은 백색이고 두 조가비가 맞물리는 곳에 이가 없다. 경사가 완만한 해안의 바위 등에 서식하며 초여름에 산란을 하고 대략 1년 정도면 성숙한 굴이 된다.

굴은 조개류 중에서도 유난히 생명력이 강하다. 열대, 온대, 한대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근해에서 서식하고 있으며 예로부터 세계 각국의 식생활 문화에 흡수돼 왔다. 어패류를 날로 먹는 습관이 거의 없는 구미인들 조차 굴만은 껍질에 붙은 그대로 레몬즙이나 케첩을 곁들여 먹는다.

굴은 기원전 로마 시대부터 양식됐다고 기록돼 있다. 그 유명한 쥴리어스 시저가 영국 원정을 계획했던 것도, 템즈강 하구에서 잡히는 굴이 목적이었다는 설이 있다. 또 나폴레옹은 촌각을 다투는 전쟁 중에서도 제철을 맞은 싱싱한 굴만큼은 식탁에서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독일의 비스마르크도 생굴의 껍질에 남은 즙을 곧잘 핥아 마셨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영웅은 굴을 좋아한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굴을 좋아해서 영웅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굴에 함유돼 있는 풍부한 영양이 힘과 지혜를 길러주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굴이 언제부터 양식됐는지에 대해서는 근거를 밝힐 만한 자료가 없다. 1908년 경 섬진강 하구에서 일부 굴양식을 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당시의 양식 방법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그리고 1908년 이후에 일본인들에 의해서 영산강 하구와 송전만 등에서 양식업이 시작됐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굴양식은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에 와서는 수하식 굴양식업이 성행해 경남 통영을 중심으로 남해안에서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이후에도 굴 생산량은 계속 증가했으며, 이렇게 생산된 굴은 대부분 생굴로 우리 겨레의 밥상을 상큼하게 장식해 주었고 나머지는 건굴이나 통조림 형태로 가공돼 수출되기도 했다.

<성분> 굴은 3대 영양소는 물론 비타민, 미네랄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 완전식품인 우유와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굴을 일컬어 ‘바다의 우유’라고 한다. 또 체내에서의 단백질의 이용척도를 ‘아미노산 산가(酸價)’로 나타내는데 우유의 아미노산 산가를 100으로 할 때 굴의 산가는 77이 된다.

그리고 굴에 들어 있는 지방질은 콜레스테롤치를 내리는 다량의 불포화 지방산을 함유하고 있다. 콜레스테롤치가 걱정이 돼 생굴을 놓고 입맛을 다시면서도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염려할 필요가 없다. 굴에는 다량의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지만 동시에 ‘타우린’이라는 황이온을 포함하고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이 들어 있어 이것이 콜레스테롤의 해를 제거해 준다는 사실이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당질에 있어서도 굴은 우유보다 뛰어나며 특히 글리코겐(포도당의 저장형태)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에 굴이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임상실험 결과, 굴은 또한 중성지방의 수치를 내리는 역할
을 한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 증명되듯이 굴은 중성지방의 수치를 내려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알콜과 피로에 시달린 간장을 보호하는 작용을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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