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하철에서 월간 잡지사 중년 기자가 수첩을 보고 있는 나를 향해서 손에 들고 있는 수첩이 신기한 듯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자기 신원을 밝히고 수첩에 대한 몇 가지를 물어왔다. 어르신 수첩을 보여 주시고 매년 쓰고 있는 수첩이 집에 보관되어 있으면 사진을 찍어 자기에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조금 의아스럽긴 하였지만 무엇인가 글의 소재가 될 것같은 생각에 그러겠노라 대답을 하고 다음 날 6년간 일기를 쓰듯 메모한 수첩 6권을 찾아 사진 영상으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두 달쯤 후에 소식을 전해왔다. 책이 나왔으니 만나 보자는 것이었다. 책 두 페이지에 한 페이지는 손에 들고 있는 펼쳐진 수첩으로 내 손과 손목이 크게 확대되어 한 장 전면을 차지하였는데 손목은 주름살이 더덕더덕한 어느 노인의 것이어서 오히려 얼굴 사진이 없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책 속의 글을 읽어보니 이 시대 컴맹이냐 라는 비판의 소리일 수 있지만 나를 묘사한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제목은 아날로그가 편하지오. 빠르고 편한 것을 거부하고 어쩌면 느리고 천천히 생각하는 기록을 보면서... 우리 일상이 어느새 기계의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어쩌면 길들여져 왔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손에서 놓으면 왠지 소외될 듯한 느낌과 불안증세를 주는 것이 스마트폰이라고 할까. 특히 전철 안의 모습이 그러하다 모든 사람들 손과 눈이 바쁘다. 나 또한 그 부류에서 극히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흔적이 스마트폰에 들어 있기에... 어느날 음악회가 있어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전철 안에서 우연히 나의 눈을 사로잡은 수첩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간단한 메모식으로 한글, 영어, 한자 등 다양한 글씨로 그날의 할 일, 약속, 모임 등이 적혀 있었고 이러한 기록은 어렸을 때부터 해온 습관화된 부분이라고 하신 수첩의 주인공은 86세 이주섭 어르신이다.

손글씨로 적었던 글로 전문지에 기고도 하고(이면지로 활용하여 한바닥 적어 주로 FAX로 발송 제출하는 방식)책을 3권이나 출간한 공직에서 은퇴한 분으로 2년 후 미수에 한번 더 산문집을 마지막으로 출간한다는 꿈을 갖고 있으니 좋은 일일 것 같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글쓰기로 하면 참으로 편리할 텐데 느리고 힘들더라도 아날로그를 고수하며 삶의 일상이 된 것이다. 손글씨는 마음까지 담아 놓은 것이기에 오랜 세월 버리지 않고 소장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뿌듯해하셨다. (외출 시는 메고 다니는 가방엔 항상 수첩과 펜을 챙기신다고)

스마트폰을 몇 차레 분실하여 저장된 모든 부분을 잃었을 때 난감한 일을 겪었던 나로서는 어르신의 수첩이 큰 공감이 되었고 한때 정리했던 다이어리를 찾아보고 싶어젔다. 디지털을 잠시 내려놓고 아날로그의 친숙함으로 되돌아가보면 추억의 행복이 커지지 않을까. ⪡글, 사진 이유경⪢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