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의 홍어도 그렇지만 꼬막이 심심찮게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무 엇 때문일까 한번쯤 생각하게 하고 있다. 변현상 시인의 벌교라는 시를 보면 전라도 보성 벌교/저 갯벌이 종교다/ 날름날름 주워 먹는/꼬막은 구휼금이고/널배가 넓은 신전을/헌금도 없이 지나간다.

설명을 하자면 꼬막 잡는 방법은 독특하여 주로 아낙네들이 갯벌에서 널(뻘)배를 타고 한쪽 다리는 널배에 올리고 다른 발은 밀면서 미끄러지듯 이동하고 갯벌을 훑으면서 꼬막을 걷어 올리며 채취한다.

여름 땡볕에 가을 서늘볕에 속속들이 맛이 든 갯꽃같은 꼬막들 그런 꼬막을 보면 소설 태백산맥이 생각난다. 소설속에도 벌교는 아주 큰 삶의 무대였다. 종교라는 말에 수긍되는 것은 넓은 신전을/헌금도 없이 지나지만/널배들은 지나치기 힘든 오체투지 같다고 했다. 노을을 등지고 나오는 벌교 어머니들의 진흙덩이는 저녁을 밀레의 만종에 비할 것인가, 그런 진흙 배밀이 덕에 우리는 진흙이 키워내는 최상의 꼬막을 즐긴다. 올해도 이슥한 겨울 주막에서는 꼬막 까는 소리깨나 높겠다고 어느 시조 시인은 말하고 있다.

조정래 작가는 순천 출신이지만 어린 시절 벌교에서 자랐다. 그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꼬막 먹던 이야기가 나온다. 감자나 고구마를 삶듯 해버리면 꼬막을 무치나 마나가 된다. 간간하고 쫄깃쫄깃하고 얼큰하기도 하고 비릿하기도 한 그 맛은 술안주로 제격이다. 벌교 꼬막을 한 접시 수북하게 밥상에 올려놓고 싶으니 콩나물이 그러하듯 꼬막도 잔치집에 흔하고도 소중한 반찬이다.

한편 고흥 출신 송수권 시인도 남도에 서정을 묘사하면서 벌교 꼬막집에갔어요/꼬막 정식을 시켜 놓고/ 그리고 삶을 꼬막 한접시/올라왔어요(중략)/그쪽말로 그맛 한번 숭악하더라구요.

깊은 맛의 표현이 숭악한 맛의 꼬막을 먹으면서 시인은 곰삭은 시를 쓰겠다고 다짐해 본다.

최영란 시에도 「꼬막 캐는 여자의 바다」에 보면 겨울이 되면 눈부신 벌교 갯벌에 가보아라/ 참꼬막이 가득 담긴/ 함지박의 웃음이 될뿐/ 광활한 치마폭을 펼친 바다는/지금 일몰 시간/ 노을지는 수평선을 목에 감고/뻘밭에 백로는/저혼자 고독하다/

꼬막 캐는 여자들의 봄이 오는 바다 서편제의 고장인 보성의 구성진 소리와 벌교 꼬막이 절묘하게 어우러져서 새로운 소리와 뻘밭에 바다의 문화가 문학 속에서 다시 한번 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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