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우정을 시샘하듯 만나지도 못했는데 다행히 지난 6월에 동기생들이 5년만에 모임을 가졌다. 근심어린 눈빛으로 아직은 마스크를 쓴 채 모였지만 동기동창생 23명의 열정은 그 눈빛에서 아직은 사막의 별처럼 빛이 나고 있었다. 모두가 8순을 넘긴 나이기에 세월도 비켜가지 못한 채 지팡이를 짚기도 하고 백발에 주름진 그야말로 계피학발(鷄皮鶴髮)의 모습으로 변모해가고 있었다. 8순을 넘는 인생을 살다 보니 내 것이 없고 빚만 남은 빚쟁이처럼 외롭고 서럽고 처량하지 않았겠는가. 이제 병 없이 탈 없이 살아도 겨우 10년을 못넘긴다는 생각을 하니 그나마 반갑고 좋은 건 친구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바다에서 어로행위를 하고, 배를 만들고, 수산생물을 증식시켜야 하고, 수산물을 가공 처리도 하고 수산업을 경영하는 학문을 배웠고 해양 훈련도 하면서 이른바 5개 학과에서 학부를 졸업한 동기생들이 어느덧 60여년의 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의 우리 만남이 고래를 닮아서인지 바다의 특수성 때문인지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모습이 막바지에 용기와 기백이 조금은 남아있는 듯 보여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고 보니 과대표들이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도 하고 근황도 얘기해 주었고 그것뿐이랴 한사람씩 반가움과 감격스러움이 솔직한 느낌도 얘기하고 있었다.

지금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계산하지 않는 그저 옆에서 작은 것만이라도 위로가 되는 친구로 남아 있자. 도움이 되지는 못해도 격려하면서 무슨 일에 한걸음에 달려오는 그런 친구로 남아 있자. 친구라서 한결같이 곁에 있을 수는 없지만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품을 지닌 진실한 친구로 남아 있자.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여러 분야에 친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꾸준히 교류해온 친구가 따로 있듯이 종종 소식이라도 전하면서 살았으면 바라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자 그 많던 친구들이 소식도 없고 발길이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예전에 한 친구가 많은 책을 구입해서 유배지로 보내주었다. 극도의 외로움으로 힘들었던 추사에게 그 책은 엄청난 위로와 용기와 감동을 주었다. 그 후 둘 사이의 우정을 한폭의 그림에 담은 것이 날씨가 차가운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는「세한도」이다. 모름지기 친구 관계가 자연의 이치와 무엇이 다르랴. 친구야 정말 반갑다. 부디 아프지 말고 내년 춘사월에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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