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인이라면 정약전 선생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이 수산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수산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면 그의 연구 행적을 찾아서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쯤 남해 한가운데 검은섬 흑산도라는 섬이 있었다. 큰 지네가 우글거렸고 독사 뱀이 다래넝쿨처럼 엉켜있는 무시무시한 섬에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머리를 풀어 헤친 사람이 부서진 배를 타고 이 섬에 다다랐다. 이곳의 섬 별장과 섬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유배 온 죄인 정약전은 좌랑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이곳에 도착하였지만 섬 사람들은 처음에는 천주쟁이라 하여 정좌랑을 감시하고 역적 대하듯 멸시했다. 그러나 정좌랑은 서당을 열고 서당 이름을「어유당」(魚游堂)(물고기와 노는 집)이라 이름 짓고 물고기 연구를 시작한 것이며 갯벌을 헤집고 다니면서 어부의 뒤를 따라다니며 무엇인가 꼼꼼히 관찰해 나갔다. 그리고 해양 생물의 이름, 모양, 크기, 습성, 맛, 쓰임새, 분포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으며 총 3권으로 분류하고 편집해 나갔다.

지금에 와서 보면 해양생물에 대한 분류가 독창적이고 체계적으로 1권(비늘이 있는 73종), 2권(비늘이 없는 43종), 그리고 3권(갑각류 조개류 기타 잡류 생물)으로 분류한 것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으며 그림 그리듯이 묘사한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는 원본은 없고 동생 정약용의 제자였던 이청이라는 학자가 필사한 것만이 남아있는 정도이다. 앞서 관찰과 조사는 책에서 영화에서 등장하는「창대」라는 마을 총각이 정약전의 물고기 해부에 도움을 주면서 조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창대는 청어 물고기 척추 뼈를 세어보니 영남산 청어는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53마디라고 밝혀냈다.

이는 어류 분류학에 중요한 학문인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당시에는 세계적인 과학적 탐구 방법과 설명이며 묘사의 치밀함은 후세에 학자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자산어보 머리말에 보면 흑산은 검은 것이 무섭고 싫어서 집사람 편지에 흑산이 아닌 자산이라 쓰였다고 했다. 정약전은 약 14년간의 유배기간에 해양생물 155종을 분석하고 기록하였으며 세계적인 어류도감에 해당하는 「자산어보」의 훌륭한 업적이 후학들 연구에 크나큰 도움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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