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세상인지 일상마저 멈추어 버린 그래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친구들 사이에 누가 선뜻 나서서 친구를 찾아가기도 힘들고 누구를 불러올 수도 없는 힘든 시기를 우리는 견디고 있는 것이다.

은퇴를 모르고 사업을 하는 서 회장이 동기생 5명을 불러서 모임을 주선했다. 수협 임원 출신도 있지만 2명의 선장 출신은 3대양을 누비던 젊은 기백으로 아직도 소주 몇 병은 거뜬히 해치우는 그런 기세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옛 추억담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원양어업 효시라면 1957년 참치연승 시험조사선이 출항하면서 시작되어 60년대 원양어업 초창기에 신어장 개척과 3대양을 누비면서 어업활동은 마침내 수산물 수출로 이어져서 수산해양 강국을 이룩하였고 급기야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큰 역할을 한 두 동기생이었기에 감회가 남다른 옛 선장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조남직 선장은 항해사에서 선장으로 출항하면서 태평양에서 태풍을 만나 침몰하는 고려원양 선원을 구조하면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유명한 선장이었다.

1964년 실항사 시절에는 제2지남호가 남태평양 사모아 근해에서 삼각파도에 휩쓸려 침몰하는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서울 경동고를 졸업하고 청운의 꿈을 같이한 송세배 동기생이 무사하기를 빌었지만 하늘도 무심하게 희생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천만다행으로 23명의 승선 선원 중 단 2명만 살아남은 현장에서 천운의 동기생 문인리는 살아남았고 문인리 항해사는 남태평양 작은 섬 「라카한카섬」에 표류하여 머무르고 있을 때 실항사로 김재철 선장과 함께 현장에 가서 6시간 거리에 있는 「오니이끼」섬으로 무사히 인도하기도 하였다. 그 무렵 사모아 부근에서 조업하던 「아투아호」에 동기생 박용태 선장도 기상 악화로 너울성 파도에 침수되면서 선박은 복원력을 잃고 침몰되어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너는 서글픈 사연도 듣고 있었다.

훌륭한 선원은 험한 파도가 만든다는 속담도 있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투를 벌이다 무참히 희생된 고귀한 생명들이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날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는 것이다.

조 선장은 같은 시기에 같은 해역에서 동기생들 그들의 희생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가눌 길 없으니 한 잔의 술과 함께 격앙된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제대로 된 장비도 갖추지 못한 그 시절의 빈약한 선박과 열악한 환경 속애서 동기생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오늘의 추억담이 아니라 그날의 아픔과 절규를 들으면서 공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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