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기 박사는 어류도감, 어류박물지 등을 발간한 60년대 수산 원로이시다.

정 박사께서 70년대 초 내수동에 거주하실 때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자제분인 정석조 씨(국내 송어종란 최초 도입 알선자)가 수산청 같은 과에 근무했고 산하단체(협회)에도 같이 근무한 인연으로 부친 정 박사 댁에서 옛시절 수산에 얽힌 소중한 사연들을 가끔 들려주시기도 했다.

1949년 9월 강진에서 그물에 걸린 큰 거북을 잡았을 때는 우리나라에 경사이고 길조라 하시면서 경무대에서 장관을 통하여 수산전문가 정문기 박사를 추천하여 큰 거북에 대한 사육방법을 경무대에서 여러 번 논의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창경원에서 큰 거북을 전시 사육하도록 권고했지만 정 박사께서는 열대 또는 아열대생물이므로 얼어죽기에 제주도나 완도를 추천하였으나 시설면이나 치안문제로 부산 수산시험장으로 결정했다. 거북은 중국 예기에는 거북, 기린, 봉황,용 4가지를 영수라 하여 영물로 여겼고 신성시했으며 거북과 학은 천년 동안 살 수 있다 하여 장수의 상징물로 여겨오기도 했다. 큰 거북은 세계 60종이 분포하지만 우리나라 여름철에 난류를 따라 6종이 왕래하여 그중에 한 마리라고 말씀드렸다.

부산 수산시험장에서는 축양할 수 있는 수조시설을 마련하고 사육을 하였으며 그 후 이 대통령께서는 예고없이 큰 거북을 보러 수산시험장을 방문하였으며 고위층 인사들도 부산 현장으로 자주 거북을 보러 들렀다고 했다. 정 박사께서 저술한 책에 의하면 큰 거북이 6.25 사변에도 무사하였으나 수복 후에 병이 들었으며 서울에 명의들이 동원되었으나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이 대통령은 너무 상심하여 죽은 거북을 박제로 만들어 경무대에 두고 보다가 도로 부산시험장으로 돌려보내 보관하면서 끝이 났다.

두 번째로 1957년 10월 13일에는 부산수산대학 학생들이 대만 해역에서 원양항해 실습 중에 2m70㎝ 길이의 거대한 청새치를 잡아서 이승만 대통령에 선사하였다. 바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거대한 물고기가 청새치가 아닌가. 그 당시 대학측에서 선사한 진귀한 물고기를 경무대 앞마당에 세워놓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사진보도를 보관하고 있다.

세 번째는 1949년 1월 어느 고등학생이 얼음낚시로 길이 97㎝나 되는 금잉어를 낚시로 잡아 이승만 대통령에 선사했다는 보도까지 보았으니 그동안 세월도 많이 흘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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