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쓰는 사람은 당연히 수필의 대가 금아 피천득 선생의 작품을 읽었으며 특히 독자의 사랑을 받은 대표작 「인연」을 한번 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짜릿해 하고 있으며 그리워하지만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인연’의 마지막 부분에 젊은 날의 금아와 일본 소녀 아사코의 만남과 헤어짐의 추억을 잔잔하게 묘사한 이 수필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졌다.

금아 피천득 선생을 국민 수필가라 하고 한국 근대 수필의 기초를 세우고 수필문학의 선구자라고 얘기하고 있다. 자신의 글 「수필에서」 보면 “수필은 난이요 학이요, 청초하고 날렵한 여인”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그의 글은 맑고 담백하면서도 향기로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의 글은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읽고 나면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여운을 남긴다. 금아 선생은 자기가 태어난 5월을 유난히 좋아했다. 수필 「5월 중에」를 보면 “내 나이를 물어 무엇하리 나는 5월속에 있다” 자신이 썼던 글과 같은 삶을 살았던 「5월의 소년」이 5월끝자락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5월에 태어나서 5월에 타계한 것이다.

금아 선생은 외동딸 서영에 대한 깊은 애정이 유별났다. 수필 「서영이」에 보면 “서영이는 나의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내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며 나에게 글을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친구”라고 하면서 깊은 애정이 남달랐으며 결혼 전날 눈물을 그치지 않는 서영이를 보다 못해 금아 선생은 결혼식 참석을 포기한 일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외동딸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딸을 보내고 싶지 않는 애절한 심정은 두 딸을 둔 아비로서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딸을 보내고도 서영이가 갖고 놀았다는 인형 「난영」이를 밤마다 데리고 잤다.

그런가 하면 여자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을 마지막 애인이라 불렀고 흠모하던 작가 바이런, 예이츠의 사진을 걸어놓고 살았다. 소년처럼 순수했던 금아 선생은 담백한 글을 남기고 단아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100세를 불과 3년을 남기고 저세상으로 떠났다. 떠나는 해 이해인 수녀의 추모사가 서글픔을 더했다. 금아 선생의 존재 자체로 시와 수필이 되고 산호가 되고 진주가 되셨다고 늘 사랑하고 떠난다는 선생은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고 쓰신다던 선생님은 이제 먼 길로 떠나셨지만 맑은 사랑 푸른 그리움을 남기고 가셨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을 들으시면서 영원한 천상 행복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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