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수산인 또는 수산 학문을 배운 사람에게는 손암 정약전의 자산어보의 존재 가치와 열악한 환경 속에 해양생물을 조사 연구하는 학자다운 모습을 보면서 고전 속의 손암 선생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조선왕조 순조임금 당시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유배당한 흑산도는 황량하고 혹독한 곳이었다. 손암과 같이 유배를 당한 동생 정약용은 흑산도를 이렇게 묘사했다. 고래이빨 산과 같이 배를 삼켰다가 다시 뿜어낸다네 지네크기는 쥐엄나무 같고 독사는 등나무차럼 엉켜 있지 흑산도는 울창한 산림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 해서 흑산도라 했다.

흑산도에 도착한 손암은 절망했다. 한양 마포나루에서 헤어진 가족을 전남 나주 율정까지 동행했다가 유배지 강진으로 떠난 동생 정약용을 생전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에 치를 떨었다. 손암은 흑산도에서 배편으로 가끔 전해오는 동생 편지가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목포에서 500리 떨어진 흑산도로 유배된 손암 선생이 바다물고기에 마음 붙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어느날 바닷가로 걷던 손암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로 포말을 일으키며 하늘을 솟구치는 물고기는 날치였음을 보게 된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는 신비스런 생명체들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알아챘다.

궁궐의 화려함보다도 더 현란한 규장각에서 논쟁보다도 더 매혹적인 스스로 빛을 내는 활화산 같은 생명체의 세계 그것은 바다물고기의 세계라고 깨닫게 된다. 손암선생은 바다 물고기와 더불어 어울리면서 생명체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삶을 지탱할 지식의 환희를 바다에서 건져 올리게 된다.

손암은 흑산도에서 유배생활 16년 동안 발견되는 물고기와 해양생물의 227종에 대한 조사 연구는 물고기의 분포와 이동 경로 형태 습성을 꼼꼼히 기록했고 지방고유 명칭과 용도까지 빼놓지 않았다. 육지가 아득한 죽음의 유배지에서 한국 최초의 해양 생물학 백과서적인「자산어보」가 그렇게 탄생하였다.

흑산도는 산속 마을에는 산란 차 올라오는 숭어떼도 자주 눈에 띄었다. 큰놈은 길이가 5~6자 정도이고 머리는 편편하고 몸은 둥글다. 검은색을 띄고 있지만 배쪽은 희다. 완전히 그물에 걸린 놈들도 뻘 속에 온몸을 파묻고 숨어서 한쪽 눈으로 동정을 살핀다. 봄이 오고 뻐꾸기 울어대면 배가 불룩한 복어는 마을 앞 시냇물로 거슬러 올라온다. 배는 희고 등에는 도장 자국같은 붉은 줄이 그려져 있다.

1814년 200 여종의 해양생물을 담은 책을 엮어서 손암은 유배에서 풀려난 동생 정약용을 맞으러 우이군도로 나아가게 된다. 올해 들어 파묻혀 있던「자산어보」가 햇빛을 보고 영화가 되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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