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든 시기에 고향 친구들과 가진 값진 모임에서 전임 건설회사 최 사장이 북유럽 중에 좀처럼 가기 힘든 아이슬랜드에 다녀온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주 먼 나라에 남한 면적과 비슷하지만 36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고 얼음이 둥둥 떠 있는 호수에 유람선을 탄 얘기서부터 넓은 초원지대에 양모와 대구 어업이 그 나라의 2대 산업 구조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며칠간을 그 나라에 마트에서 말린 대구포를 구입했는데 간식용으로 술안주로는 최고의 별미였다고 했다. 본래 유럽산 대구는 북대서양 노르웨이 이이슬랜드, 그린랜드 바다에 떼를 지어 살고 있다.

1944년 아이슬랜드는 덴마크에서 독립하였지만 부존자원이 없는 동토의 땅에서 대구잡이 수산업은 국민 생계의 수단이었다.

그 당시에는 바다에 경계선이 없다 보니 아이슬랜드 앞바다에서 조업하던 외국선박과 충돌하고 포탄도 오갔다. 그후에 영국과도 3차례 대구전쟁으로 국교단절까지 이르렀다는 역사 기록이 있었다.

그 옛날 북유럽 바이킹의 모험도 튼튼한 배와 단백질이 풍부한 말린 대구포가 양식이 되어 바다활동이 가능하였다고 한다. 말린 대구포는 보존성과 무게가 가벼워서 옛부터 훌륭한 교역 물품이 되었으며 서민을 위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으면서 「바다의 빵」으로 불리는 역할을 해냈다.

더욱이 꾸덕꾸덕 말리거나 염장을 하면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감칠 맛이 나고 영양가도 풍부해지는 특성이 있디. 프랑스에 가면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사람들에 의해 고향 음식「바칼랴우」를 많이 먹는데 이는 대구를 소금에 절여서(염장) 말려놓은 식재료로서 대구만을「바칼랴우」라고 부른다. 특별한 날 가족과 고향사람과 어울려 먹는 음식이지만 유럽해안 지방에서 광범위하게 즐겨 먹는 음식으로 알려졌다. 대구는 우리나라 외에 일본, 유럽에서 많이 먹는 생선으로 일본 이끼다유히군에서는 대구어업을 위한 거리축제가 요란하게 열리고 첫 어획 대구는 신전에 바치는 풍습도 알려져 있다.

대구는 당연히 생대구로 먹는 것이 최고지만 대구 자체의 근육 조직이 너무 연해서 신선도가 빨리 떨어져 냉동을 해야 하지만 냉동기간이 길어지면 수분이 분리되어 스펀지 현상이 일어나 맛이 급격히 떨어지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동해는 명태, 서해는 조기, 남해는 대구가 대표 어종으로 최고로 꼽고 있다. 그러기에 조선 정조 때 발간된「공신정례」책자에 보면 궁중에 진상품의 물목을 적은 책으로 거기에 건대구, 반건대구,대구어란해(알젓),대구고지해(이리젓)가 포함된 귀한 생선임에는 틀림 없다. 대구는 입이 커서 지은 이름이지만 다양한 먹이를 닥치는 대로 삼키는 습성으로 1918년 베링해에서 잡힌 대구 뱃속에 다이아몬드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자기 몸만큼 크기도 삼켜버리니 대구도 잘 잡으면 횡재할 수 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