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30년 전 1991년 9월에 한국과 러시아 정부 간에 체결된 어업협정에 따라 매년 한·러 어업위원회가 열렸다. 그 시절에 회의에 참석한 소중한 체험으로 가끔은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우리는 세월과 함께 많은 기억을 흘러 보내지만 그러나 가슴에 담아두는 기억도 있기 마련이다. 어업위원회 회의는 모스코바에서 한겨울에 열흘 동안 지루하게 이어졌다. 외국에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러시아 치안 상태가 불안정하여 외국인으로 시내를 활보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회의장만 왕래하는 반복된 일과 때문이었다.

마치 바다 속 바위에 붙어사는 따개비는 작고 쓸모없지만 8년간 연구한 찰스 다윈은 지루한 과정을 이겨내면서 학문의 토대로 마련했듯이 지루한 러시아 회의 자체도 쉽지 않지만 좋은 결과로 해마다 많은 어획 쿼터를 확보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는 휴일이나 일과 후 여러 명이 시내 명소를 찾아 나섰는데 모스크바 중심지의 크렘린은 모스코바 강을 따라 삼각형의 땅위에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안쪽의 크렘린에는 80m 높이의 종탑이 있고 러시아 대통령궁도 이 안에 있다.

성벽 동쪽에는 「붉은 광장」 주변에 러시아 역사를 상징하는 성바실리 대성당과 국립박물관이 있으며 이들은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시내 명소를 다니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사회주의 체제 속에 전통 문화는 곳곳에서 살아 숨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 러시아에 가면 상징적인 선물로 보드카 술과 마트료시카(목각인형)를 많이 구입하였다. 어느 해인가 모스코바 근교에 있는 목각 인형생산 공장을 견학했다. 그 공장은 소규모지만 19세기부터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공장에는 가볍고 연한 오리나무를 기계로 깎아서 눈짐작으로 만들어 내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숙련공들이 있었다. 그 기계는 목각 인형을 크고 작게 다른 크기로 만들어서 하나의 큰 인형 속에 5~6개의 여러 인형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나무를 깎고 다른 쪽에서는 색을 입히고 바탕 속에 덧칠을 하면서 하루에 건조시키는 것으로 완성하고 있었다. 세 번 째로 기억나는 우주센터에서 1957년 세계 최초로 「가가린」 우주인이 사용했던 장비, 복장, 음식 등 전시품을 보면서 우주선으로 사다리를 딛고 올라가서 내부까지 관람할 수 있었다.

네 번 째로 기억나는 것은 주러대사관 수산관을 통하여 볼쇼이극장 입장표를 구입하여 세계정상의 볼쇼이 발레 「호두까기인형」, 「백조의 호수」 등을 볼 수 있었는데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를 만나면서 크게 발전시킨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시 불란서에 「리도」쇼가 있다면 러시아의 볼쇼이는 세계적인 3대 쇼에 속한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넓은 땅을 갖고 있지만 1년 중 200일이 땅이 얼어 있고 1월이면 영하 40℃까지 내려간다. 이러한 추위 때문에 ‘샤프카’란 털모자를 쓰고 보드카 한 모금이면 추위도 사르르 녹는다는 그들의 얘기가 아직까지 귀에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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