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 5월의 고요함 속에 기지개를 키듯 문학단체에서 리무진을 타고 1박2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후에 떠나 강원 횡성에 있는 팬션에서 1박을 하면서 많은 인원이 시낭송 그리고 작품 품평회도 가졌다. 다음날 상쾌한 아침을 열면서 호수 둘래길을 한참을 걸으면서 이것이 힐링임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평창으로 가는 길은 설랬다. 평창은 옛날 같으면 산간 오지로 이름난 곳이지만 지금은 고속도로를 통해 접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오대산의 명소 월정사도 들렀지만 목적지는 이효석 문학관이었다. 봉평 이효석 문학마을 들판에 하얗게 뒤덮인 메밀꽃을 아직은 볼 수 없지만 이효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봉평이고 작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소설은 장돌뱅이 허생원이 동이, 조선달이 이곳저곳을 돌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도착하였다. 문학관 입구에는 효석문학비가 있고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석축과 진달래 철쭉이 만발하여 반겨주는 것 같았다. 문학관에서는 우리 문학단체의 명성 때문인지 사진을 찍으면서 해설사까지 동원되었으니 오늘 제대로 작가의 문학사상과 삶 그리고 작품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눈을 감은 채 해설사는 작품의 명구절을 암송해 주기도 했다.「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곳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그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은 한국 현대 단편소설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이 아름다운 자연이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시킨 소설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순박한 본성을 그려 내는 주체의식과 달밤에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인 문체가 뛰어난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효석은 유년기에 평창에서 소학교를 마치면서 어린 시절을 경험과 자연을 그린 작품의 바탕이 되었고 청소년 시절에는 서울에서 경기중, 서울대학교를 다니면서 러시아 소설과 영국의 시를 많이 읽었고 1927년부터 단편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1932년 처갓집이 있는 함경도 경성농업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자연과 가깝게 지내면서 서구풍의 카페에도 다니고 이국적인 정취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취향성도 영화와 축음기음악에 열정적인 애호가이며 서구적인 세계에 많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방을 들여다보면 책상과 축음기, 불란서 미인 배우 ‘다니엘다류’의 사진이 벽면에 걸려 있어 당시를 재현하고 있었다.

그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교수 시절은 감각적 묘사 능력과 문학과 예술은 삶의 전부로 받아들인 문학인으로 200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말년은 1940년 차남과 아내를 잃고 실의에 방황하는 세월 속에 자신도 병들어 1942년 5월 36세로 세상을 떠났다. 2012년 그의 많은 작품을 텍스트화 하고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그의 자녀들도 꿋꿋이 자라 사재를 출연해 이효석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알찬 아비의 전집까지 냈으며 짧지만 뜨거웠던 아비의 삶을 기려온 자녀들 덕분에 오늘에 한국문학에 경사와 더불어 풍성한 문화의 꿈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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