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바다에 살고 있는 생소한 물고기 「위어」는 3월부터 5월까지 산란을 위해 금강으로 거슬러 올라온다. 은백색에 칼 모양으로 생긴 위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인 금강 어귀에 있는 갈대밭에 산란하기 때문에 한문으로 갈대 「위」자를 써서 위어라 불리우며 「웅어」라고도 한다.

어민들은 이때 올라오는 바다 길목에 작은 배를 이용하여 하루에 두 번 반복되는 밀물이 시작되기 전에 그물을 치고 한 시간 정도 지나 썰물이 시작되면 그물을 건져 올려서 한번에 300~400마리 위어가 잡힌다. 이는 지형적으로 밀물과 바닷물이 합치는 곳이 많은 충남 서천과 강경에서 잡히고 있으며 논산시는 위어가 3개월에 약 5톤 정도 출하된다고 추정하고 있다. 위어는 성질이 급해서 그물에 걸리면 곧바로 죽기 때문에 어부들만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3~4월에 잡힌 위어가 최고로 치며 5월이 지나면 가시가 억세져서 맛이 떨어진다.

오래 전에 부여 출장길에 먹어본 위어는 마침 산란기여서 살이 통통하고 기름기가 많아 담백하고 고소한 느낌이며 위어를 잘게 썰어서 생선회와 그리고 오이와 미나리를 초고추장에 버무린 회무침도 맛이 있었다는 느낌이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예전에 한강에 올라오는 위어는 이조 중종 10년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승정원 승지들이 사옹원에서 관리하는 위어 물고기를 잘못 관리했다는 이유로 승지를 좌천시키라는 상소문도 있었다. 위어는 조기 멸치 복어 청어 밴댕이와 함께 세금으로 바치는 물고기를 임금님 진상품으로 사용했다. 고종 5년(1868년)5월에 기록을 보면 연이은 장마로 위어잡이 계절을 놓쳐서 원래 위어를 바치기로 하였지만 위어대신 소금에 절인 밴댕이를 바치기로 하여 고종이 허락하였다는 내용도 있다.

조정에서는 다른 생선과 달리 위어와 밴댕이를 공급하기 위하여 사옹원의 하급기관인 위어소를 경기 서해안 일대에 두었지만 행주산성 부근 것이 가장 번창하였다고 한다. 5월경에는 바다에서 산란을 위해 행주산성 양천 부근으로 올라오므로 위어소 소속 어민들이 잡았기에 한양 도성이 가까운 곳이나 궁중에서 위어를 구해서 횟감과 젓갈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유명한 화가 경재 정선은 예전에 한강 인근에 경치를 담은 행주산성 부근 행호의 풍경과 위어잡이 배를 그려서 「행어관어」라 하였고 거기에 한편의 「시」가 붙어 있다. 늦봄 복어국/ 초여름 위어회/ 복사꽃 넘실넘실 떠 내려오니 /그물을 행호밖으로 던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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