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초기 유럽에서는 여권(통행증)이 권력자가 여행자에게 주는 편지형식을 취했다. 특별히 유럽 각지의 종교적 성지를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고위 성직자들이 발행하는 추천서 형식의 통행증을 소지했다. 1890년 경 외국인에게 여권을 요구하는 나라는 페르시아, 루마니아, 러시아, 세르비아를 포함해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1856년 미국정부도 국무장관에게 여권발급 권한을 부여했으나 1918년까지 외국인이 미국에 들어올 때 여권을 검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 각국은 자국민들에게 여권을 발급하고, 이민을 통제하기 위하여 입국사증(VISA)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마저도 최근에는 사전입국심사제도(APIS)라는 이름으로 미국을 위시한 많은 나라들이 엄격히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초기 나라마다 여권의 형태가 각양각색이어서 1921년 국제연맹에서 32페이지 여권을 사용하도록 권장했다. 우리나라에서 여권을 제도화한 것은 1906년 ‘한국인의외국여권규칙’이 제정된 것이 최초다. 이후 1982년 ‘여권법’이 제정되면서 현재의 제도로 발전하여 왔다. 이와 함께 외항선이나 원양어선에 승선하는 선원들에게는 여권과 별개의 선원수첩(Seamans Book)이 발행되었으나 선진국에서는 여권으로 통일하고 있는 추세다.
세계 수산물 수출 대국(제2위)인 노르웨이가 처음으로 물고기 여권을 발급하고 있다. 자국산 수산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원산지, 등급, 가공법, 보관온도 등 세밀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바코드 형식의 연어 여권(Salmon Passport) 제도를 세계 최초로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해썹(HACCP) 즉 위해 방지를 위한 사전 예방적 식품안전관리 체계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수산물의 식품으로의 제조단계에 중점을 두었을 뿐 생산단계 추적에는 미흡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수산물 이력제니, 수산물 품질인증제 등의 보완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식품 및 환경 단체 등의 유사 인증제도 난립과 업체의 중복인증 등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도 확보에 실패했다. 노르웨이 수산업은 석유. 가스에 이어 두 번째 주력 산업이다. 1차 산업인 수산업을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인 인공지능(AI)을 접목하고, 5G(5세대) 첨단 기술 집합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 연어양식장에선 3D 레이저 스캐너가 연어의 생김새를 인식한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연어도 눈과 입, 아가미 주위에 있는 점의 분포 형태가 다르다. 이 과정에서 연어 개체마다 가상의 신분증이 만들어진다. 이는 어병에 감염된 개체의 격리로 집단폐사를 사전에 방지하고, 양식지역, 생산자, 채취일시 등 세부자료가 입력된다, 노르웨이에 있어서 한국은 제4위의 수산물 수출국이다. 지난해 노르웨이로부터 연어 약 2만5천 톤, 고등어 약 2만7천 톤을 수입했다.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양식 연어의 약 90% 이상의 노르웨이산이다. 연간 270만 톤을 146개국에 수출하는 노르웨이가 AI와 5G를 이용한 스마트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그 잠재력은 엄청날 것이다. 필자는 1994년 노르웨이 서부의 베르겐(Bergen) 지역의 연어양식장을 방문했다. 당시에도 해상 가두리 연어양식장에 2층 건물(연구동)이 있고, 각종 장비가 자동화되고, 자동 급이 시설도 있었다. 특실에는 기꼬망 간장과 와사비(고추냉이)까지 준비되어 있어 놀라운 고객 서비스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노르웨이 수산업은 날고 있다. 21세기 물고기 여권시대에 우리 가두리 양식의 현주소는? 정책 당국과 양식가 모두 심각히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