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수산업은 공주와 금강 북안에서 발견된 각종 유적과 유물에서 선사시대(구석기시대)로부터 어로, 채집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현대한국수산사, 1987). 해방이 되던 1945년 어선척수는 연근해에 42,326척(총톤수152,399톤)에 생산량 230,583톤(양식 2,386톤 포함)이었다. 그러나 40년 뒤인 1985년의 어선척수는 90,970척(총톤수858,471톤)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반면 해상 사고도 많았을 것을 추정(1974∼1985: 6,241척, 어선사고 3,176명)된다. 하지만 2017년에는 구조조정 탓으로 66,736척(양식, 운반선 등 포함)에 총톤수 512,060톤으로 감소됐다. 같은 해의 해상 사고는 504척에 인평피해는 79명(실종33명 포함)이었다. <어업인의 업무관련성 손상 및 질병에 관한 고찰>(농촌의학. 지역보건학회지 제25권, 2010.3)에 의하면 2000∼2007 기간 중 어선원의 해난사고 피해는 연평균 63명이 사망하였고, 82명이 실종되었다. 또한 최근 5년(2013-2017)간 어선사고는 전체 해양사고 6,508건 중 69.1%를 차지하고 있고, 인명 피해도 2017년도 전체 해난사고(사망. 실종자) 145명 중 어선원이 100명(70.0%)을 차지하고 있다. (수산연감 2018). 따라서 해수부(수협, 원협)의 철저한 선박안전 점검 및 어선원에 대한 교육이 해양사고 예방의 관건이다.
원양어업도 1966년 해외 어장에 진출한 이래 사모아, 라스팔마스(스페인), 파라마리보(수리남), 피지, 타이티(불령 폴리네시아), 앙골라 등 6개 기지에 320기의 순직 선원들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미국령 사모아의 위령탑의 동판에는 박목월 시인의 유작이 된 헌사가 새겨져 있다. “바다로 뻗으려는 겨레의 꿈을 안고 오대양을 누비며 새 어장을 개척하고 겨레의 풍요한 내일을 위하여 헌신하던 꽃다운 젊은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 (중략) 원양어업의 뱃길이 자주 오가는 이역의 태양과 성좌 아래 정성을 모아 이 탑을 세우나니 위대한 개척자의 영령이여 보람참 겨레의 핏줄이여 이곳에 편히 깃드소서”(1978, 9,30). 국내에도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과 원양업계가 공동으로 원양어업 초기에 희생된 선원들을 기리기 위하여 대학부지 내에 “장한 넋들 교정을 메아리치는 종소리를 듣고 있는가”로 시작하는 향파 이주홍 님의 추모 시구(詩句)가 새겨진 ‘백경탑’을 건립(1971. 5)하고, 매년 이들을 기리고 있다. 부산 태종대에도 ’순직 선원 위령탑‘이 세워지고 이은상 시인의 추모사가 얼룩져 있다. 우리 수산업의 역사는 암흑기 수출의 역군으로 궁핍한 조국의 부흥을 위해 젊음을 불태운 피와 땀의 역사다. 21세기 조국의 부흥과 함께 이들의 고귀한 순직이 헛되지 않도록 수산인 모두의 마음속에 진혼곡(鎭魂曲)을 띄어보는 뜻 깊은 현충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