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면 은연중에 어느 작가에 관심을 두게 된다. 만난 적도, 또다른 인연도 없지만 그 작가의 글속에 전해오는 공감대가 있고 매끄러운 서사의 표현으로 비교적 그 작가의 글을 많이 접하게 되고 심지어는 생활 속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마침 이달에 박완서 작가 8주기를 맞아 한국 중견작가 29명이 작가를 기리는 꽁트 모음집을 발간했다. 박완서 작가는 감명 깊은 글을 쓰면서 힘들고 고통스런 삶속에서도 긍정성을 읽지 않는 그 생애에 끔직한 일이 일어났지만 그 고통을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안타가운 심정으로 보게 되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에 작가의 남편과 외아들을 한꺼번에 잃고 하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주님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믿어서도 아닙니다. 만에 하나라도 당신이 계실까봐 계셔서 남은 내 식구를 누군가를 또 탐내실까봐 무서워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남편은 병으로 잃었지만 26세의 의사 아들은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보내고 세상이 싫어지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천주교에 입교한지 4년째였던 작가는 작품 「한말씀만 하소서」에서 참혹한 고통을 처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긴 인생에는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원이 가망 없는 극형이 연속되던 날 냉정하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지만 도대체 밥이 넘어 가질 않았다.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삶에 대한 거부가 일어났다. 지켜보던 큰딸이 어머님을 그가 사는 부산으로 모셨다. 그러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보이는 수영만에선 올림픽 열기가 한창이어서 그 또한 못견딜 일이었다. 보다 못해 이해인 수녀가 작가에게 인근 수녀원에서 지내기를 권했다. 수녀원에 간 작가는 “주님과 한판 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려왔다”라고 적었다. 주님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을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한말씀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그러나 “신의 한말씀”은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에 밥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육신과 정신의 분열이 일어나면서 한없이 슬펐던 것이다. 작가는 밥을 통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막내딸 집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 본당 신부에게 인사를 갔다가 탁자 위에 놓인 필통에 적힌 「밥이 되어라」는 글귀를 보고 수녀원에서 맡은 밥 냄새를 떠올리게 된다.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절대자의 한말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신 거야 우선 먹고 살아가는 신의 응답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작가는 이해인 수녀와의 대담에서 ‘아품과 슬픔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거에요’ 그냥 견디어 사는 거죠. 이달에 구입한 작가가 차린 「대범한 밥상」 단편집을 열심히 읽으면서 곯은 배를 채워보리라. 작가를 고통에서 일상으로 이끈 밥은 과연 무엇일까. 인간의 생로병사가 하늘의 뜻이라 해도 그 고통을 견디며 사는 평범한 진리를 작가의 글을 통하여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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