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가수 이미자님이 불렀던 “황포돛대”라는 노래가 있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담고....황포 돛대야’로 끝나는 이 노래는 50년이 넘은 빛바랜 노래지만 이 시대를 살아 온 세대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노래다. 1963년 12월 작사자 이용일(이일윤)님이 경기도 연천의 한 육군 포병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석양에 돛을 달고 항해하는 황포돛배를 보고 포구로 몰려드는 어린 시절의 고향 바다인 진해 영길만의 고깃배를 떠 올리며 노래 말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의 서울이 있게 된 것도 조선시대 한강을 통한 대규모 운송이 황포돛배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전국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품이 한강을 통해 한성(서울)에 모였다가 다시 한강을 통해 전국으로 유통되었다. 그 중 한성의 남쪽 광나루(워커힐 부근)에서 서쪽 양화나루까지를 경강(京江)이라고 했는데 이 일대가 가장 활발한 상업 지대였다. 반면 대동강, 임진강, 한강, 제물포, 노을진 포구, 영산강, 영일만, 하동포구 팔십리, 통영만의 통구멍이 등의 황포돛배는 동력선이 개발되기 전 오늘의 우리나라 수산업을 배태한 선구자였다. 황토 물을 들인 돛을 단 배는 1970년대 초까지 중요한 해상운송수단인 반면 수산물 생산 수단 이었다. 1894-1897년 네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이사벨라 비숍’의 방문기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의하면 비숍은 당시 배를 타고 충청도 단양까지 유람한 후 ‘조선에서는 소금이나 새우젓 등을 비롯한 많은 물품이 한강에서 배를 통해 지방의 포구로 운반되고, 포구의 상인들은 소나 말, 지게 등을 이용해서 도시의 장터로 옮긴다.’고 기록했다. 포구의 상권을 장악한 경강상인들은 서울의 객주에서 구입한 물품들을 황포돛배에 실어 강원도나 충청도로 가져가 팔고, 그곳에서 쌀, 소금, 나무, 숯, 생선 등을 싣고 와 한강의 포구나 객주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 기록에는 한강을 오르내리던 황포돛배(Orange-Sailed junk)의 수는 하루 평균 100여 척이었고, 배 한 척에 대략 30가마니의 쌀이나 소금 그리고 생선을 실었다고 한다. 당시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발달하기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황포돛배가 운송과 교통수단 그리고 고기잡이 수단으로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1970년대 초 세계 각 연안국들은 3해리 영해를 12해리로 넓히고 200해리라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앞 다투어 선포했다. 공해 어로의 자유는 사실상 없어졌다. 1977년 850척에 이르던 우리나라 원양어선 수는 현재 실제 조업 기준으로 200여척(2016년 255척)에 불과하다고 알려지고 있어 최 전성기 대비 2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다. 남태평양 상의 미국령 사모아의 참치기지선 기지와 대서양의 라스팔마스 트롤기지가 폐쇄되거나 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미국의 오호츠크 및 베링(베링공해 포함)해에서 쫓겨 난지 오래다. 일본과의 새로운 어업협정에 따라 홋카이도 주변 수역에서도 철수했다. 명태어장의 유일한 수역인 러시아는 2002년부터 민간 쿼터 배정을 종료하고, 정부 간 쿼터(약2만톤)도 매년 줄이는 대신 모든 북양 트롤선의 국적을 러시아로 옮겨 합작회사(2016년 11개사 20척)의 깃발을 달고 조업토록 하여 명맥은 유지하고 있으나, IUU어업방지협정 및 관련법, 고시 등을 강화하여 우리 어선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는 이미 외국어선을 규제한지 오래다. 여기에 UN은 IUU(해양생물의 불법, 비보고, 비규제)라는 국제행동계획을 채택하였다. 따라서 한 때 세계 1위 원양어업대국의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 한편 우리나라 연근해어업도 자원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해안에 회유하던 그 많던 명태는 활포란태 한 마리를 찾기 위해 현상금을 내건 바 있고, 시중 유통 명태의 100%를 원양산에 의존하고 있다. 오징어도 자원 감소로 2년 새 오징어 값이 60%가 상승하고, 제조용 오징어 값도 20∼50% 올랐다고 한다. 따라서 짬뽕에서 오징어가 사라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2014년도 원양산을 포함하여 34만 톤이나 생산되던 오징어가 2017년에는 13만 톤으로 절반 이상 준데 기인한다고 한다.

최근 정부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양어업 진흥을 위하여 원양산업발전법(遠産法) 개정 및 선박건조 정부지원율 상승 등을 추진 중이나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 그린피스 및 시민환경연구소 등과의 협의에 큰 진전이 없다고 한다. 국내 원산법 규정이 징역형 위주로 되어 있어, 이의 완화와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징역형 위주를 행정처분으로 완화하고 징역형과 벌금형의 수준을 조정하고자 하나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초창기와는 달리 육지의 안전한 직업을 선호하는 풍조로 원양어선에 승선기피 내국인 해기사와 선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 해기사가 용이하게 승선할 수 있도록 법적인 승선인원 조정 등의 관련법 개정과 원양노조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일찍이 건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60년대 이전처럼 황포돛대나 노를 저어 조업하든 낭만적인 시대가 아닐뿐더러 원양어업의 전성기도 아니다. 막대한 입어료를 지불하면서도 국제규정에 부응하고, 수산 선진국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신해양법 시대다. 정부가 원양어업진흥대책과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하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이나 다행한 일이다.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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