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도 말복도 지났다. 날씨가 서늘해지자 본격적인 생선회(生鮮膾)철이 돌아왔다. 불이나 소금이 발명되기 전 인류는 생선이나 육지동물을 날것으로도 먹었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회(膾)문화로 발전시킨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3개국뿐이다. 그러나 중국은 회 문화를 발전시켜 오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튀김과 볶음을 위주로 하는 식문화로 바뀌었다. 한편 회(膾)는 섬나라인 일본인들이 물고기를 날로 먹던 습관이 생선회로 발전해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으로 전파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생선회를 뜻하는 사시미(刺身)가 일본 문헌에 등장한 것은 1399년이다. 이 시기는 조선에서는 제2대 임금인 정종이 즉위하던 해다. <스즈카케키(鈴鹿家記)>라는 요리서에 잉어회 뜨는 법을 설명하면서 사시미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1489년의 <시죠오류우 호오초오 가키(四條流包丁書)>에는 해파리, 꿩이나 산새를 잡아 소금에 절여 얇게 썬 것도 사시미라고 했다. 한편 조선 후기학자 조재삼(趙在三)이 쓴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생선의 회를 ‘鱠’로 육고기의 회를 ‘膾’로 표기하였으나 지금은 생선회를 ‘膾’로 표기하고 있다. 여기에 <옹희잡지(甕饎雜誌)>,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진찬의궤(進饌儀軌)> 등에는 육고기회에 대한 자세한 회 조리 방법이 나온다.

일본에서 생선회가 퍼진 것은 임진왜란 직후인 에도시대(江戶時代)부터다. 이것은 바다가 없던 내륙의 교토(京都)시대를 마감하고, 바닷가인 도쿄(東京)시대가 개막되면서 일본인의 식탁에 사시미 비중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도쿄를 비롯한 일본 관동지방에서는 사시미라고 부르고, 오사카 등의 관서지방에서는 츠쿠리라고 부른다. 사시미는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1336-1573년)부터 먹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선도 유지 방법과 저장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종류가 다양해졌다. 반면 우리의 회 문화는 일본보다 앞서 고려 중기(1170-1270년)의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붉은 생선회를 안주삼아/반병 술 기울이니’라고 읊었고, 고려 말의 묵은(牧隱) 이색(李穡)도 ‘물고기 잡아 눈발처럼 잘게 회를 쳤다’고 노래했다. 반면 중국의 생선회는 수수께끼다. 춘추전국 시대(BC770-BC221년)의 <시경(詩經)>에 구운 자라와 생선회 이야기가 나오고 <예기(禮記)>에도 봄에는 파, 가을에는 겨자를 곁들여 회를 먹는다고 했다. 공자도 <논어>에서 장(醬)이 없으면 회를 먹지 않았다. 공자가 회를 좋아했으므로 그를 숭배하던 무리들이 아무런 저항감도 가지지 않고 육류나 어패류의 회를 먹었다고 한다. 맹자에 실린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된다’는 말의 회자는 날생선(膾)과 구운 고기(炙)라는 뜻이니 그만큼 회를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다. 당·송 때도 생선회를 즐겼다. 소동파(蘇東坡)는 생선회를 주제로 13편의 시를 썼고, 홍무제가 반포한 교육칙어인 육유(陸游)에는 27편이 실려 있다. 이런 생선회가 명나라 중반 이후 갑자기 사라졌다. 조선중기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가 조선 사람이 회 먹는 것을 보고 물고기를 날로 먹는 오랑캐라며 비웃었다는 내용이 있다. 실제로 명·청 때 문헌에는 생선회가 거의 보이지 않는데 그 이유는 오리무중이다. 현대 중국 요리에도 생선회는 없다.

한편 한국과 일본에서는 생선회는 고추나 간장이 보급되기 전에는 생강초나 겨자초를 사용했다. 이 후에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와사비)가 등장했다. 685년 일본의 목간(木簡)에 와사비(委佐俾)라는 기록이 있고, 718년 부역령(賦役令)에는 와사비(山葵)라고 표시하고 있다. 또한 718년 <본초화명(本草和名)>에는 와사비(和佐比)라고 다르게 표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카라미(辛味) 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독점적으로 비밀리에 재배했다고 하여 와사비(委佐秘)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와사비는 일본이 원산지로 매운맛 성분에는 살균효과가 있으며 10가지 이상의 향미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고 식재료의 품미를 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울릉도가 원산지나 지금은 많은 곳에서 재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 와사비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가마쿠라시대(鐮倉時代, 1180-1333년)에 채소와 함께 이용되었다고 하나 본격적인 사용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년)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1712년에 출판된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図會)>에는 소바(메밀국수)에 와사비, 무 등의 향미 채소를 곁들여 제공된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스시(초밥)에도 와사비가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풍미가 한층 살아났다. 와사비의 어원도 호칭에서 보듯이 매운맛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매운맛과는 관련이 없다는 설로 나뉜다. 와사비는 크게 혼와사비(本와사비)와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 미국을 통해 들여 온 세이요우 와사비(西洋와사비)가 있으나 일본 음식에 어울리지 않아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혼와사비를 사용하고 있다. 생선회를 먹을 때 간장에 고추냉이를 섞으면 고추냉이의 풍미가 감소되기 때문에, 생선회 위에 고추냉이를 얹은 후 간장에 찍어서 먹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근래 북핵문제와 관련 언론이 사용하고 있는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 한국 배제)이란 단어에 대해 얼마 전 일간지에 재미 저술인의 글이 게재되었다. Korea passing은 콩글리쉬이고 ‘passover Korea(한국 건너뛰기)’나 ‘한국 왕따’ 등 좋은 말이 많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우리에겐 생선회란 좋은 말이 있는데도 보통 식자층에서 사시미라고 하고, 고추냉이 대신 와사비라고 한다. 다시 한 번 나 자신을 돌아볼 때다. 참치, 넙치, 도미, 방어, 복어, 전복, 해삼 등 생선회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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