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도 끝자락이고, 무던히도 더웠던 올 여름도 삼복이 지나면서 입추를 앞두고 있으나 더위는 쉽게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여름 더위를 다스리는 지혜로 복날의 삼계탕, 민어탕, 장어구이 그리고 시원한 냉면이 손꼽힌다. 90년대 초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정을 소화하던 중 평양냉면의 원조로 1961년 8월 해방절 기념으로 개관한 ‘옥류관(玉流館)’에 점심초대를 받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건물의 규모가 컸다. 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동시에 1000명이 식사할 수 있다고 했다.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에서 비싼 냉면을 누가 먹는지 잠간 생각에 잠겼으나 우리와는 달리 동원되는 집체행사가 많은 사회체제를 감안한다면 한편 이해가 되었다. 우리일행은 미국, 영국에서 온 각 분야(광산, 산림, 수산 등 20여명) 교포 전문가들로 안내된 곳은 호화롭게 장식된 특실이었다. 이미 조직(예약)되었다고 하며 물냉면이 오늘의 메뉴란다. 북한 대동강 맥주가 나오고 이어서 냉면이 나왔는데 우리가 흔히 본 비주얼이 아니었다. 고명으로 얹어진 것이 우리가 흔히 보아온 편육이 아니라 미트볼(meat ball,완자)이었다. 겨자와 식초를 치고 비빈다음 첫 젓가락을 입에 넣었으니 우리가 그간 먹어온 냉면맛과는 너무나 차이가 컸다. 알고 보니 꿩 국물로 우려낸 육수에 꿩고기 완자였다. 이것이 원조 평양냉면으로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 경성의 요정에 특수층에게 선을 보인적은 있으나, 본격적으로는 6.25가 끝난 후 남쪽에 냉면이 전해지면서 우리 입맛에 맡도록 개량되어 왔기 때문에 너무나 낯선 냉면이 되고 말았다. 여분의 사리까지 나왔으나 반쯤 먹고는 대부분 중단했다. 그러나 고향이 북쪽이었던 교포 두 세분은 그릇을 다 비웠다. 순간 스쳐가는 생각이 통일이 되면 음식통일도 중요한 과제가 되겠구나 생각했다.

탈북민들이 남쪽에 내려와 정착하는 과정에서 냉면과 온반으로 대표되는 북한식 음식점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초기와는 달리 몇 곳을 제외하고는 거의 문을 닫고 말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음식점을 찾았으나 입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면(冷麪, 찬국수)은 17세기(1600년대) 초 조선인조 때 문인인 장유(張維)의 “계곡집(谿谷集” 1635년 편찬)에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1849년에 쓰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진찬의궤(進饌儀軌)”, 1869년의 “규곤요람(閨壼蓼藍)”,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時議全書)”, “부인필지(夫人必知)” 등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중기부터 즐겨먹었던 음식으로 추측되고 있다. 특히 고종황제는 대한문 밖의 국수집에서 냉면을 배달하여 먹었다고 한다. 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약간 섞어 만든 압착성 국수로 메밀이 많이 생산되는 북부지방인 북한에서 발달하였고, 북한 간행물에 의하면 사리원, 강계, 청진 등의 낮선 이름을 포함하여 여덟 가지의 냉면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고 공훈요리사까지 등장한다. 원래는 겨울음식이었으나 지금은 여름의 대표 기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냉면은 지역에 따라 특성을 가지고 발전해왔다. 대표적인 평양냉면은 꿩 탕과 동치미 국물을 붓고 돼지고기 삼겹살을 사용한다. 반면 함흥냉면은 감자녹말만을 고집하기 때문에 국수의 올이 소의 힘줄보다 질기고 가자미, 홍어 등 생선회를 고추장으로 양념하고 국수에 얹어 맵게 비벼서 먹는다. 남쪽에서는 진주냉면이 유명하다. 순 메밀로 냉면국수를 만들고 해물로 낸 육수에 소고기 수육을 얹어먹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옥천냉면(해주냉면)으로 해주냉면이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으로 넘어와 발전한 것으로 육수는 돼지고기만을 사용한다. 서울식 냉면은 함흥냉면을 기본으로 막국수와 교배되어 새콤달콤한 육수로 서울 입맛에 맞춰 개량되었다. 이외에도 칡냉면, 야콘냉면(고구마류 전분), 녹차냉면, 냉중화면(중국식), 연길냉면, 닭냉면, 모리오카냉면(일본 재일교포가 고향의 함흥냉면을 개량), 농마국수(옥수수전분) 그리고 ‘코다리’ 냉면이 있다. 코다리는 명태를 할복하여 내장을 제거하고 꾸들꾸들 반 건조시킨 명태를 말한다. 코다리(냉동 반건 명태)는 강원도 속초에서 작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명태코를 줄로 꿰어 몇 마리씩 팔기 좋게 묶은 것을 이른다. 사실은 코를 꿴 것이 아니고 입을 꿰었으나 왠지 코다리로 부르게 되었고 여기에 도전한 몇몇 이름들이 살아남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명태의 몸통을 짚으로 엮어 내다 팔았다고 하여 ‘엮걸이’라는 명칭이 있었고, 잡은 시기에 따라 동지바지(동지에 잡은 명태), 막물태(끝물에 잡은 명태), 꺽태(산란 직후 뼈만 남은 명태), 애기태(크기가 작은 명태) 등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코다리를 불려서 찢은 다음 양념장, 식초 등을 넣고 부드러워질 때까지 조물조물 무친 다음 냉장고에 넣어 30분 이상 맛이 배도록 숙성시킨 다음 살얼음이 둥둥 뜨는 냉면 육수에 코다리 고명을 얹어 먹으면 여름철 더위를 극복하는 환상의 음식이 된다. 코다리냉면은 저지방 고단백 건강식으로 다이어트에 특히 좋고, 메티오닌과 타우린 같은 풍부한 아미노산이 숙취해소와 간장을 보호하고, 비타민 B1, B2는 피로회복과 정신건강 그리고 염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우리는 흔히 일본식 초밥을 스시(壽司,つし)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의 스시(旨,지)와 얇게 저민다는 뜻의 스시(乍,사)외에도 목숨을 맡기고 즐긴다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수산식품이나 해산물로 된 음식 이름을 지을 때 깊은 뜻이 담겼는지 한번 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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