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암 스님(澤庵 僧, 1573-1643)은 열 살에 출가하고 스물아홉에 교토의 ‘다이토구지(大德寺)’의 주지스님이 된 일본 에도(江戶)초기 중국 당나라 불교 선종 5가(家)의 한 종파인 임제종(臨濟宗)의 고승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우리나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사이에 살았고, 도쿄 시나가와(品川) 부근에 도카이지(東海寺)라는 절을 개창한 후, 서른두 살에 스승으로부터 ‘다꾸앙(澤庵, たくあん)'이라는 법호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승려이면서 시인, 서예가, 화가였으며, 센노 리큐(千利休-일본 다도 정립)에 버금가는 차의 명인이었다. 또한 무아의 경지에서 강물에 비친 달을 두 동강 냈다는 일본의 전설적인 사무라이(侍, 무사)로 수목화가였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의 정신적인 스승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단무지의 일본 이름인 다꾸앙(다깡, 다꽝)은 이 스님이 개발한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치를 멀리하고 평생 동안 높은 법력과 철저하게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식탁과 당시 주민들의 어려운 생활환경을 보면서 같이 먹을 수 있도록 무를 소금에 절이고 쌀겨에 담아 숙성시켰던 것이다. 한편 일본의 전국시대 병사들이 싸움을 하면서 소금물로만 간을 한 맨 주먹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자신을 찾아온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에게 다꾸앙(澤庵漬, たくあんつげ)을 권하고, 매일 산해진미의 기름진 음식으로 식상한 도쿠가와는 담백한 맛의 다꾸앙에 반하여 이 후 출병하는 병졸들이 다꾸앙을 허리춤에 차고 전쟁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 사학자들은 택암 스님은 일본 스님이 아니라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혜승(慧僧)으로 일본의 기록이 잘못됐다고 반박하고 있어 택암 스님의 국적에 대하여는 이론이 있다.

6세기 중국에서 간행된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이미 소금, 식초, 장류, 술지게미, 곡물 등을 이용한 다양한 채소절임 방법이 나오고, 905년 일본 헤이안 시대(平安,794년-1185년)의 ’연희식(延喜式)’에 기록되어 있는 ‘수수보리지(須須保利漬)’가 다꾸앙 제조법과 비슷한데 수수보리는 일본 ‘고사기(古事記)’에 백제에서 건너와 술 담그는 법을 전수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으니 오랜 세월 다꾸앙과 비슷한 음식을 한중일 삼국에서 먹었을 것으로 짐작이 되고, 이 외 ‘임원십륙지’에도 다꾸앙과 비슷한 조리법이 기록되어 있어 국적을 불문하고 다꾸앙 스님이 최초 개발자라는 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단무지(무장아찌)가 한반도에서도 동치미와 함께 일찍 개발되었으나 크게 번성하지 못한 것은 18세기 들어 고추가 널리 보급되면서 여러 종류의 김치가 한반도의 주요한 채소 절임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단무지는 위축되었다. 그러나 채소절임 종류가 빈약한 일본은 다꾸앙을 주요 반찬으로 계속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에 다꾸앙이 널리 보급되었으며, 광복과 더불어 일본은 물러갔으나 다꾸앙(倭짠지)은 오늘날까지도 그 위세가 크게 위축되지 않았다. 생선회(膾) 문화가 일반화되고 김(해태)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김밥을 즐기는 사회계층이 많아짐과 동시에 단무지의 대량 생산 시대에 살고 있으나 유해색소 사용 시비 등으로 크게 사랑받지 못하고, 중국 음식점에서 양파와 함께 공동으로 나오는 흔한 반찬이 되었다. 물론 기름진 중국음식과 무에 들어있는 ‘디아스타제’ 효소가 밀가루 음식의 소화에 일조를 하고 있다.

단무지는 1950년대에 작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단은 ‘달다’는 뜻과 무는 ‘무’를 지칭하며 지는 ‘지(漬)’를 뜻하여 만들어진 이름으로 국립국어원은 일본식 짠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무지는 전북 익산(이리)의 단무지가 최고의 명품이라고 알려져 있고, 백제 수수보리지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한다. 익산은 만경평야와 인접하고, 쌀의 집산지였던 관계로 쌀겨를 얻기가 용이하여 단무지 제조방법도 발달하였다. 그리고 이 방법은 여러 대에 걸쳐 대물림하여 왔다고 하니, 수 백 년 전부터 이 땅에도 한국 고유의 단무지가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지구상에서 겨울이 있는 국가는 채소를 보관하는 일이 큰 과제였다. 따라서 식초, 소금, 장류를 이용하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서구에서는 피클(pickle)이 발달하였고, 일본에서는 츠케모노(漬物), 중국에는 쑤안차이(酸菜)나 파오차이(泡菜)가 발달하였다. 물론 한국에는 김치를 필두로 동치미, 장아찌, 단무지 등이 개발되었다. 한편 일본에 있는 일식당에 들어가면 다꾸앙이 딱 세 쪽 나온다. 이것도 다꾸앙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당시 스님은 세 쪽으로 식사를 끝냈다고 한다. 그러나 일식당에서는 다꾸앙이라는 말 대신에 ‘신꼬’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다. 물론 신꼬는 백김치와 비슷한 채소절임의 총칭이나 지금은 다꾸앙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최근 한국을 찾아온 일본 관광객이 귀국길에 김치와 해태 외에도 한국 단무지를 사가지고 돌아간다. 단무지 소비량은 생선회, 김밥 및 자장면 소비량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니, 한국 단무지도 김치와 같이 세계적인 음식 반열에 올려지도록 다양화를 연구하고 개발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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