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에서 70리 길에 김삿갓면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지형이 험난해서도 아니고 심산유곡에 원시림이 울창해서도 아닌데 그 옛날 김삿갓의 집안이 폐족되어 세상 사람들에 괄시와 천대가 심하여 숨어살던 곳이니 오지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향해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선배 한분이 가끔 이곳에 와서 쉬었다가라는 권유가 있었고 그리고 며칠 전 4월말에 단종제가 있으니 겸사해서 오라는 전화에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1698년부터 시작해서 315회를 맞은 단종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행사로 소개되고 있었다. 조선조 6대 임금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 왕권을 빼앗기고 17세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고 비운의 삶을 마감했다. 단종제는 단종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리고 동강 둔치에서는 칡줄다리기, 가장행렬, 활쏘기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어 마치 강릉단오제를 연상케 하는 놀이문화까지 곁들이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조말엽 홍경래난 때 항복한 선천부사였던 조부를 알지 못한 채 탄핵한 글을 써서 김삿갓은 장원이 되었으나 조상을 욕되게 하였으니 어찌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겠느냐며 자책감에서 삿갓을 쓰고 평생을 방랑한 불우한 천재시인. 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관과 무덤이 있는 유적지가 삿갓면(하동면)에 위치하고 있어 느긋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조부님을 욕되게 한 죄의식 속에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한 것에 조상에 대한 숭배정신과 효행의 도리라고 생각은 되지만 집안내력을 모르고 글을 쓰고 한일에 대하여는 이 시대에 살면서 그럴 수 있을까하는 의문점을 던져주고 있다.

며칠간 머무는 곳이 산골 중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앞산에 칡뿌리 캐러 갔다가 산돼지를 만났다는 심심찮은 얘기를 들으면서 도심 속에서 벗어난 시골 풍경이 한결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개울가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따라 한참을 걸으면서 녹음이 우거진 이산저산을 둘러보며 들판에 피어있는 들꽃에 눈길을 주노라면 어느새 산골저녁은 빨리 찾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푸근한 시골풍경이 비릿한 갯마을의 바닷가처럼 오랜만에 보고 느끼는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는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 여생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 솟구쳐 오르는 것은 나이 탓일까.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