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카마쿠라 시대의 마사무네(正宗), 무로마치(室町) 막부시대의 무라사마(村町) 그리고 유키미츠 등과 같은 전설적 도장(刀匠)이 있듯이, 중국에도 그에 못지않은 유명한 검장(劍匠)이 있었다.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BC722-479)에 실존했던 간장(干將)과 막야(莫耶)가 있다. 이들은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 오(吳)나라에는 초(楚)에서 멸문을 당하고 몸을 의탁해온 오자서(吳子胥)와 제(齊)에서 역시 몸을 피해 온 손무(孫武)가 오나라의 왕인 합려(闔閭)밑에서 상국(相國)과 대장군(大將軍)으로 있었다. 오나라의 왕 합려는 항시 병사들을 잘 훈련시켜 중원에서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인접국인 월(越)나라가 변방을 수시로 침범함에 따라 이를 격퇴시키고 속국으로 삼겠다는 의지도 있었다. 두 나라간 잠시 평화가 오면 오월동주(吳越同舟)라고 했다. 그러나 오나라 병사들이 소지한 칼과 창이 월나라 것만 못하여 잘 부러지고 녹이 슬어 큰 문제였다. 오 왕 합려와 대장군 손무는 초야에서 농기구만을 제작하는 간장부부를 찾아가 몸을 낮추고 조국 오나라를 위하여 병사들이 사용할 칼을 만들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이를 몇 번 사양한 간장 부부는 손무의 간청을 받아들여 두 자루의 명검과 병사들이 전쟁에 사용할 강한 칼을 만들었다.

다섯 명산의 정기와 금, 동, 철 등의 최고급 재료를 모으고 천지음양의 기를 잘 살핀 후 주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간장내외가 평소의 공정에 따라 300여명의 소녀들이 아무리 풀무질을 해도 재료가 잘 융합되질 않았다. 석 달이 지나도 왕에게 바칠 검을 완성하지 못하자 막야는 목욕재계하고, 예로부터 신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로 뛰어난 물건을 만들려면 인신공양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간장이 손쓸 겨를도 없이 도가니 속으로 몸을 던진 후 (어떤 야사에는 오 왕의 신하인 백비라는 간신이 강제로 막야의 부친 구자야를 용광로에 던졌다고 함) 후에야 보검 재료가 융합이 잘되어 보검 두 자루가 탄생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사 이야기라는 책에는 오 왕이 간장 부부가 보검을 만들어 바치지 않고, 차일피일하자 간장을 죽이자(사극 ‘손자병법’에는 월나라 자객이 죽임)임신 중인 부인 막야가 명검 두 자루를 만들어 한 자루는 바치고 한 자루를 가지고 자취를 감춘 후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적비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당부하고 죽었다고 한다. 적비는 어머니 막야의 유언에 따라 복수의 기회를 기다리던 중 어느 날 나그네가 찾아와 오 왕을 죽이기 위하여서는 적비 당신의 목을 오 왕에게 바쳐야 한다고 하여 자살케 한 후 그 목과 명검 한 자루를 오 왕에게 가지고 가서 이 목은 간장의 아들 적비의 목이나 눈을 감지 않고 있으니 펄펄 끓는 물에 담그도록 한 후 오 왕이 그것을 들여다보는 순간 바치러 가지고 간 명검으로 오 왕의 목을 처서 끓는 물에 넣은 후 자기목도 베어 그 속에 넣었다고 한다. 그러나 세 사람 목이 뜨거운 물속에서 구별할 수 없게 되자 이를 합장한 후 삼왕묘 (三王墓)라고 하였다고 이야기는 전한다. 이에 대항하여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3년간의 와신상담(臥薪嘗膽) 끝에 오나라에 복수한데 사용했다는 구천검(Goujian Sword)도 명검으로 현재 중국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일본의 3대 신검으로 알려진 쿠사나가 노 쓰루기(草ながの劒)와 함께 무라사마(村正)의 칼은 도쿠가와(德川)집안과는 악연이 있는 요도(妖刀)로 이 칼로 이에야스(家康) 아버지 키요야쓰(淸康)가 부하에게 살해되었고, 아들 노부야쓰(信康)가 이 칼로 할복(介錯,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목을 침)하였고, 이에야쓰(家康)자신도 이 칼에 손을 베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무라사마 장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칼 미노카네모토(美濃兼元)는 명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전설의 검인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의 ‘용광검(龍光劍)’과 백제 근초고왕이 1873년 일본 후왕에게 하사한 (이소노카미(石上) 신궁에 보관) 칠지도(七支刀), 현재 전하지는 않고 일본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순신 장군의 쌍용검(雙龍劍), 연개소문의 다섯 자루 비도(飛刀), 김유신의 성광검(星光劍), 임경업장군의 용천검(龍泉劍)과 충렬사에 보관중인 추련검(秋蓮劍), 임진왜란 시 선조(先祖)가 하사한 김명윤(金明允)선생의 검(도봉서원에 소장)도 명검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조선시대의 호랑이 년, 호랑이 월, 호랑이 시에 만들어 졌다는 삼인검(三寅劍)과 사인검(四寅劍)등은 일본, 중국 그리고 서양 검에 비할 수 없는 명검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호수의 요정(妖精)이 준 칼 이라는 영국의 신검으로 아서왕(King Arthur)의 엑스칼리버(Excalibur)로 시인 테니슨(Tennyson) 등에 의해 시(詩)에 많이 등장한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다윗의 물매 돌에 진 거인 골리앗의 켈트-이베리안 검, 중세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샤를르마뉴 대왕(Charlemagne the Great)과 루이 14세(Louis)도 사용한 검으로 현재 루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스페인을 괴롭히던 무어족(Moors)을 격파한 비바 장군(Rodrigo Dias de Vivar, AD1043-1099)의 엘시드(El Cid)로 알려진 국보급 검과 불타는 지팡이라는 뜻의 티조나(Tizona)도 있다. 그 외에도 중세 바이킹 검(BC 300- AD 1700)으로 알려진 다마스커스 강철 검으로 공중에서 내려앉는 비단을 둘로 가른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에는 그 주조법을 모른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래된 말로 진검승부(眞劍勝負-참 겨루기)라는 말이 있다. 나무로 만든 칼이 아니라 강철 칼로 승부를 본다는 뜻으로 어느 한 쪽은 죽거나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독도(獨島), 고유가 그리고 FTA 문제 등이 아닐까.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