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선장을 지낸 여러 친구들이 삼각파도가 배를 덮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겪었던 경험담을 가끔 들려주고 있다.

초창기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이 북극성을 보면서 항해하던 그 시절은 위험을 무릅쓴 사투였다고 친구들은 아득하게 먼 그때를 회고하고 있다. 지금이야 원양어업이 많은 발전을 거듭해서 선박운영에 안전성이 보장되어 있다.

지방 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풋풋한 어느 대학생 새내기 시인이 있었다. 그 시인은 꿈이 바다이기에 좁은 육지를 떠나 넓은 바다로 경험해보자는 긴 안목과 문학의 날개를 펼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지도교수를 통해서 휴학을 하고 원양어선을 타기로 마음먹었다.

강의실을 벗어나서 배를 타보는 것이 젊은 시절에 큰 경험과 폭넓은 배움의 길이라는 교수의 권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는 꽁치 잡으러 간다고 막연히 얘기한 탓으로 부모들은 친구들과 바닷가에 학꽁치 낚시를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원양어선을 탄다기에, 부모는 그래도 선원들의 하얀 모자에 제복을 입은 사관을 떠오르면서 멋진 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출항하는 날 마침내 부산자갈치시장 부근 항구에서 아들이 타고 떠날 배를 보게 되겠다. 그 선박은 그리 크지 않은 450톤급 어선으로 겉보기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낡은 배로 보여져 부모님 입장에선 그제서야 애틋한 마음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고 있었다.

애초에 꽁치 배라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멋진 제복이 아니라 작업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현실로 다가왔다. 선원들도 내국인과 외국인들로 30명이 승선하여 작년 5월 북태평양을 향해 드디어 꽁치 잡이를 떠났다. 흔히 직업에 귀하고 천함이 없다고 하지만 어느 부모이건 자식들이 좀 편안하고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부모님들은 평소에 생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식탁에 오르는 꽁치를 볼 때마다 아들 생각에 마음이 찡해오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이 떠난 후에도 위성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았고 그럴 때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하면서 천상 뱃사람 체질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아들 녀석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의 심정에서 무거운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개월동안 망망대해에서 출렁이는 바다를 보면서 원양어선에서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고기잡이를 하고 있을 수많은 선원들의 노고를 생각하고 그리고 문학의 꿈을 키워가는 새내기 시인에게 바다를 배우고 무사히 귀향하는 날, 부모에게 언젠가는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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