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1월 18일 베이징 역에서 낡은 외투를 입은 작은 키의 노인이 기차에 올랐다. 이 열차는 중국 남단의 선전(深?) 경제특구를 향해가는 남행열차였다. 이 열차가 달리는 동안 또는 중간 역에서 쉴 때마다 이 노인이 뱉은 한마디 한마디가 20년 후인 오늘의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을 일으킨 작은 거인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다. 공산당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면 서도 이 노인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개혁과 개방을 통한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지렛대 삼아 오늘의 토대를 놓았다. 그러나 중국은 사회주의 정치체제 하에서의 산업구조 조정과 농어촌 문제, 사회보장 문제 그리고 국영기업체제의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 등에는 괄목 할 만한결과를 내놓지 못하여, 제2의 개혁, 개방을 통하여 각계각층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안된 다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어, 주변국은 물론 세계를 상대로 FTA에 추진에 적극적이고, 지난달 한.중 정상 간의 FTA추진 합의에 의거 협상개시가 가시화되고 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역시 무역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고 보면 자유무역협정은 불가피하다고 하겠다. 다만 시기와 방법만이 남아있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굳이 서둘러 진행할 필요가 없다거나, 추진할 경우에도 농수산 분야는 제외한다든가 또는 민감 품목을 제외한 낮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한 후 개방 폭을 점차 확대하는 방안을 중국 측과 협의할 수도 있겠으나 협상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으므로 이것은 우리 농어민의 희망일 뿐이지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중국 당나라에 백거이(白居易)라는 시인이 있었는데, 그는 시(詩)로써 시정(時政)을 보찰하고자 하였다. 그는 매탄옹(賣炭翁)이라는 숯 파는 노인을 등장시켜 그의 고된 삶을 통하여 당시 백성들의 고난과 고통을 묘사하고 있다.

숯을 파는 노인네/ 땔감 베어 종남산에서 숯을 굽네/ 얼굴 가득 먼지와 재와 그을음/ 귀밑털은 희끗하고 열 손가락은 검은색/ 숯 팔아서 얻은 돈으로 무었을 하려는가?(賣炭得錢何所營)/ 몸에 걸칠옷과 입으로 들어갈 음식이라네(身上衣裳口中食)/ 가련하구나 몸에 걸친 옷은 단지 홑옷일 뿐이건만(可憐身上衣正單)/ 숯값 싸질까 걱정되어 날씨 춥기를 바라네(心憂炭賤願天寒)/ (중략)/ 저잣거리 남문 밖 진흙 속에서 쉬노라니/ 펄럭펄럭 두 마리의 말 몰아 달려오는 이 누구인가?/누런 옷을 입은 사자와 흰 저고리 입은 사나이/ 손에는 문서 쥐고 입으로는 칙명이라 외치면서(手把文書口稱勅)/ 수레를 돌려 소를 몰아 북으로 끌고 가네/ 한 수레의 숯은 무게가 천여 근이나 되지만(一車炭重千餘斤)/ 대궐 칙사가 끌고 가니 아까운들 어쩔 수 없네/ 반 필의 붉은 비단과 열 자의 무늬 비단을(半匹紅紗一丈綾)/ 소머리에 걸쳐 주고 숯값으로 충당한다네(繫向牛頭充炭直)….

백거이는 이 시에서 중당(中唐) 시기에는 환관이 전권을 휘둘렀던 시기로 황색 옷을 입은 사자와 흰옷의 사나이는 바로 백성을 수탈하는 환관의 행차를 묘사하고 있으며, 추운 겨울에도 홑옷을 입고도 날씨가 더 추워져 숯이 잘 팔리기를 기원하는 매탄옹과 대조를 이루고, 숯값을 제대로 주지 않고 수레를 끌고 가는, 수탈을 당하고도 어쩔 수 없는 고단한 백성의 삶이 절절히 드러나 있다.

최근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재벌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상위 4대 재벌의 매출액이 국민총생산(GDP)의 50%를 상회하고 있고,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협력업체를 배려하기보다는 납품가를 후려치고 있다는 메뉴가 전 국민의 밥상위에 올라와 있다. 이것도 모자라 제과, 커피는 물론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들의 영업분야 까지도 자본력과 유통망을 앞세워 골목 시장에까지 진출하여 재래시장과 동네 상권을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재벌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넘쳐나자 빵집, 커피점 철수가 앞다투어 이루어지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이 거둔 초과이익을 협력업체와 나누자는 이익공유제를 실현시키고자 하나 대기업의 무관심과 회의 불참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협력이익분배제라는 생소한 말로 자율에 귀착시킬 모양이다.

이 문제는 각론으로 들어가면 우리 수산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연근해어업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없는 업종에 대한 감척사업이 진행되어 왔고, 그 동안 만은 성과(?)가 있었다고 하나 왜 그 업종이 경쟁력이 잃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연구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또한 양식사업 중 위험 부담이 적은 육상 수조 넙치 양식에 수산 기업이 대규모로 투자하여 중소규모의 양식업자들이 도태되거나 어려움이 없는지도 살폈어야 했다. 이를 경쟁력 차원에서만 본다면 동반성장은 이루어질 수 없고 수산업은 더욱 왜소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양어업 분야도 예외일 수 없다. 왜 수산 기업이라는 규모의 회사가 선망업종에서부터 낚시 업종까지 백화점식으로 운영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회사 간 업종 간 구조 조정을 통하여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또는 그 이하의 업체가 동반성장하는 상생의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는 기업의 도덕성 문제로 법이전의 문제라는 인식을 모두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경쟁 없는 세상이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선의의 경쟁이라는 단어에 전체를 묻어 왔다. 지금에 와서 1%대 99%가 왜 문제인가는 지금 요원의 불길같이 전 세계적으로 분노의 분출을 통하여 타오르고 있고,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도 현 자본주의 형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자성이 이루어졌다. 앞으로 체결될 수많은 무역자유협정을 통하여 얻는 자와 잃는 자의 괴리가 더 커지기 전에 두 단계 높은 수산정책 개발이 기대되고, 피해보상 몇 푼으로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니라 숯 파는 노인의 고뇌를 짚어보고, 중국도 배우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던가.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