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방 남서부 흑해와 카스피 해에 인접한 아스트라한(옛 이름 하지타르한)이라는 주(주도 역시 아스트라한)는 볼가 강의 삼각주에 있으며 카스피 해로부터는 약 100km 떨어져 있다. 킵차크 한국(汗國)의 타타르 칸국이었다가 1395년 티무르에게, 그리고 1556년 이반 4세에게 점령당한 바 있다가 러시아 연방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이곳은 카스피 해와 볼가 강을 중심으로 한 어업의 전진기지로 어류 통조림 산업과 철갑상어의 알인 블랙 캐비아(Caviar의 어원은 터키어의 havyar임) 생산의 중심지이다.

1994년 모스크바 어업위원회의 권고로 우리나라에 철갑상어 생산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MOU를 체결하기 위하여 수산청장을 모시고 아스트라한 주지사를 방문(1995년 답방)한 후, 볼가 강의 철갑상어를 포획하는 집단농장을 방문하기 위하여 볼가 강의 하류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안내 받은 곳은 호텔이 아니라 볼가강변에 위치한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들의 공용별장이었다. 흐루시초프(1894.4-1971.9)와 브레즈네프(1906.12-1982.11) 서기장들이 머물렀다는 똑같은 크기의 침대를 배정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침대의 크기가 보통 목재로 짠 싱글 침대에 누워보니 양쪽 팔이 침대 밑으로 떨어질 정도로 폭이 좁았다. 또 하나 놀라운 것은 별장이 볼가 강변에 위치한 관계로 인한 모기의 습격이었다. 취침 전 침대위에 놓여 진 밥상보 크기의 모기장 천을 보기는 했으나 용도를 몰라 밤새도록 모기의 습격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튿날 관리인에게 두 가지를 물어 보았다. 하나는 침대의 크기로 몸집이 컸던 서기장들이 어떻게 좁은 침대에서 잘 수 있었는지 그리고 또 하나는 밥상보 크기의 모기장의 용도였다. 관리인은 우리 일행에게 대수롭지 않게 과거 서기장들은 인민들과 똑같은 크기의 침대를 사용했고 작은 모기장 천은 얼굴만 덮고 자는 모기장 대용이라고 알려 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이것이 사실임을 나는 다른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지나 크렘린궁으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에 다이아몬드 펀드라는 곳이 있다. 관광객이 운 좋은 날 구경할 수 있는 곳으로 제정 러시아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다이아몬드를 다 모아놓은 곳으로 착각할 정도로 수 천점이 보관된 곳으로, 옛날 다이아몬드 한 점 때문에 전쟁을 했다는 역사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제정 러시아 황제(차르)들의 왕관에 장식된 것은 물론 전혀 가공되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가히 장관이다.

그리고 다른 편에는 자연 상태의 금괴(노다지)가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크기에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의 설명이 과거 공산당 서기장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악명 높은 독재자 스탈린까지도 이곳에 있는 다이아몬드나 금괴를 개인용도로 한 점도 가져간 일이 없다는 말에서 답을 얻었다.

볼가 강변에 떠있는 철갑상어 가공선을 방문하니 한국의 수산행정 책임자가 온다는 소식에 약 150kg(4m)정도 크기의 30년생 철갑상어(Beluga) 한 마리를 포획하여 기중기에 매달아 놓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한 마리에서 양동이 약 2개 분량의 캐비아가 쏟아져 나왔고, 점심시간에 전혀 가공하지 않은 이 생 캐비아를 버터대신 보리 빵에 두껍게 발라 맛보는 행운을 가졌다. 수 십 년간 이 분야에 종사한 자기들도 이렇게 큰 철갑상어는 1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때 촬영한 사진은 귀국 후 모 수산 잡지사에 기증한 일이 있다.

세계의 미식가들이 카스피 해에서 생산되는 러시아 철갑상어 알을 앞 다퉈 찾으면서 철갑상어 자원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캐비아 1kg 가격이 1만$에 달하는데도 수요는 줄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연어처럼 철갑상어도 민물에서 태어나 바다로 가서 자란 다음 산란할 시기가 되면 모천으로 돌아오는 회귀본능이 있다. 그런데 구소련이 몰락하면서 자원보호가 소홀해졌고, 여기에 마피아까지 이 사업에 개입하면서 카스피 해(볼가 강)의 철갑상어는 자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씨가 말랐다고 한다.

과거 세계 소비량의 약 90%를 공급했던 러시아의 몰락 후 카스피 해 남부의 이란이 캐비아 생산 1위국이 되었고, 러시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하여 모든 캐비아 산업을 국가에서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구두 약 통 크기의 100g들이 캔에 담긴 고급 캐비아를 400$에 수출하고, 국제시장에서는 1,000$에 판매되고 있는 실정이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소량 생산국들도 5년간 철갑상어 어획을 금지하자고 제안하고 있고, CITES 보호종으로 국제 환경보호자들이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어 곧 자원보호를 위한 강력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거위간, 송로버섯과 함께 세계 3대 진미인 캐비아를 미식가들이 포기하지 않는 한 카스피 해 철갑상어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캐비아는 비타민, 단백질, 미네랄이 풍부하고 DHA, EPA를 다량함유하고 있어 혈액순환 및 두뇌발달에 좋다. 특히 특유한 알의 향과 저칼로리 스태미너 식품이고 보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철갑상어는 과거 한국, 중국, 일본에도 서식한 종으로 자산어보에는 총절입 또는 금린사(錦鱗頁)라고 표기하고 있고, 재물보에는 전어(醴魚), 옥판어(玉版魚)등으로 기록하고 있어 서식환경이 맞고, 1995년부터 러시아로부터 철갑상어 알을 도입하여 부화 및 양식 기술에 큰 진전이 있어 충주호를 비롯한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양식하고 있는 실정이며, 지역 수산연구소에서도 알 대량 증식에 성공하였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캐비아가 서민들의 식탁에 오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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