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는 지난 17일을 2010년 김 수출 1억불(1300만속)달성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의 날’로 선포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김 양식 역사 약 300년을 이어오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김 양식 방법을 개발하여 왔으며 연간 생산량은 약 7500만속 내외가 되는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한국수산지(농상공부 수산부, 통감부, 조선해수산조합 공동)와 경상도지리지(세종 6년 경상감사 하연)에는 약 280년 전 한 노파가 섬진강 어구에서 조개 채취를 하던 중 해태가 착생된 나무를 발견한 후 대나무 등을 세워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의 수산업(1946 윤석노)에는 300년 전 하동군 관찰사가 지방 순시 중 수행원이 갈도 주민으로부터 양식 및 제조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또한 해태양식론(1953 김선앙)에는 300년 전 인조시대에 지금은 광양제철이 들어서 폐장되었으나 전남 광양 태인도에서 1606 영암 태생으로 병자호란의 삼전도 치욕 사건 후 낙향한 김여익이라는 사람이 나무에 해태가 부착된 것을 보고 대나무를 세워 본격적으로 양식하였고 이후 김을 왕실에 바쳐 임금님의 수라상에 올랐으며 임금님의 명령으로 광양의 김씨 성을 따 김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지수산(1947 정흥채)에는 약 100년 전 완도군 조약도의 김유봉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바다에 떠 있는 나무에 해태가 부착된 것을 보고 나뭇가지를 바다에 세웠더니 검은 수건을 널어놓은 듯 해태가 자랐다고 한다.

한편 조선 어업조합요람에는 전남 완도 고금면 용장리의 한 노인이 어전(漁箭)에 붙은 해태를 보고 양식하였다고 하고 조선의 수산(1937 정문기)에는 200년 전 전남 완도에서 방렴(防廉)이란 어구에 김이 착생한 것을 발견하고부터 양식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국여지승람(성종때 노사신)에 전라도 광양군 태인도의 토산품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 외에도 승정원일기, 균역청사목, 만기요람에도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김양식이 제일 먼저 시작된 것은 약 310-560년 전이라고 볼 수 있으나 신빙성을 고려할 때 약 300년 전후라고 할 수 있고 따라서 일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천초양식보다도 우리나라의 김 양식이 먼저라고 생각된다. 또한 최초양식 지역도 광양, 완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 이름 또한 다양하다. 해태(海苔 Nori)는 3가지 동음이의어의 하나로 김의 일본식 표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자산어보(玆山魚譜)에 해태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고 현재도 널리 쓰이고 있다.

시비. 선악을 판단한다는 상상의 동물로서의 해태(海豸)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되기도 한 신수(神獸)이다. 그리고 법률용어로 흔히 쓰이는 게으름을 나타내는 해태(懈怠)등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리고 김은 해태(海苔), 해의(海衣), 감태(甘苔), 청태(靑苔), 건태(乾苔)등으로 지역에 따라 그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겠다. 그러나 김 또한 6가지 동음이의어의 하나로 김, 액체가 기체로 변할 때의 김, 논밭의 잡초의 김 매기, 기회나 계기, 개암의 경북 방언, 성씨 등이 보편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김은 전 세계에 70종 정도가 분포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는 약 12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나 주로 참김(Porphyra tenera)과 방사무늬돌김(P, yezoensis)이 남해안을 중심으로 서해안까지 광범위하게 양식되고 있는 대표종이다.

김은 나트륨, 칼륨, 칼슘, 인, 철 등의 무기질과 카로틴이 많이 들어있어 비타민 A의 좋은 공급원이 된다. 그밖에 리보폴라빈, 니아신, 비타민C 등도 비교적 풍부하다. 특히 붉은 색소인 푸코에리트로빈이 있어 특유의 빛깔을 내며 감칠맛을 내는 글리신과 알라닌 등도 들어 있다. 또한 농축산물에 비해 영양분의 소화 흡수량이 높아 총 영양분의 70%가 소화 흡수된다.

김을 최초 식용으로 사용한 곳은 소금치는 것을 싫어하는 북태평양 알라스카의 인디언이었다고 인류학자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 분포가 광범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1206-83 일연)에는 신라시대에는 김을 본격적으로 식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왕조 실록(인조 18년 1640년)에는 김은 진상품과 무역품으로 귀하게 여겨서 1650년 김 1속의 값이 목면 20필까지 오른 적도 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김의 식이섬유 함량은 양배추의 16배이고 귤보다는 30배가량 높다고 하고, 달걀 2개에 포함된 비타민 A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혈압 조절(칼륨), 골다공증 예방(칼슘함량 분유와 비슷함), 갑상선 부종을 막고 요오드 부족을 해소하여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하며, 변비 예방(알긴산), 비만 방지(저 칼로리), 암 예방(유산다당 식물섬유), 건망증 해소(비타민 12), 알코올 분해(타우린), 미네랄 다량(인, 마그네슘) 등 그 효능이 다양하여 완전식품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인들은 바다의 잡초라고 하여 먹지 아니하였으나 한국, 일본인의 해외 거주자가 늘어남에 따라 그 영향으로 식용 인구가 증가하고는 있다.

그러나 역시 동양에서도 한국과 일본만이 오랜 기간 먹어 왔고 근래에 와서야 중국 및 베트남에서도 먹기 시작했다 한다. 1970년대 완도는 한때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였고 완도 개는 만 원짜리만 물고 다닌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으나 지금은 해남, 진도 등 전남 일원은 물론 경남, 전북, 충남, 경기만 까지 양식장이 확대되었다. 근래 일본에서는 아삭한 감촉 뒤에 입안에서 녹는 듯한 식감, 바다내음과 함께 은근한 감미가 퍼지는 재래종 양식으로 회귀하려는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니 우리도 한번 쯤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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