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가축 그리고 농경지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려는 노력은 기원전 3000년경의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시초라는 기록이 있다. 처음에는 두레박이 사용되다가 기원전 16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 물레방아와 동물이 끄는 양수기가 처음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원전 230년경에 아르키메데스는 소위 ‘아르키메데스의 나사’로 알려진 나선형 양수기를 사용하여 물을 공급하였고 이와 같은 시기에 그리스의 기술자 크테시비오스라는 사람이 흡입 밸브와 압력 조절 밸브가 장착된 펌프를 발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689년 그리스의 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드니 파팽과 1841년 미국 기술자 헨리 웨딩턴 그리고 1916년 오스트리아 기술자 빅토르 카플란이 성능이 향상된 펌프로 개량시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마야 인들의 비(雨) 숭배는 대단하여 매년 봄에는 비의 신을 위한 성대한 의식을 거행했다. 이 때 겨우 열네 살짜리 어린 소녀를 선발해 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삼고 신의 궁전으로 통하는 우물에 소녀를 각종 황금과 보석 장식품 등과 함께 던졌다고 한다.

1987년 7월 중순 프랑스의 탐험가 다니엘이 이 우물을 실제로 발견했으나 미국 마피아에 납치되어 희생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말 서구의 고고학자들은 이 우물을 재 탐험했고 수많은 금은보화와 함께 여러 구의 해골도 발견했다고 한다.

구약성경(창 26:)에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광야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유목민들에게는 우물은 생명줄과도 같았다. 특히 우물 하나를 놓고 부족과 부족이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귀하고 신성시 되어왔던 것이나 다른 부족에게 계속 빼앗기고 이삭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우물을 여섯 개나 더 팠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우물에 대한 기록은 창덕궁 후원의 연못인 부용지 북서쪽 모서리 땅속에서 조선 전. 후기 때의 어정(왕과 왕족들이 사용)으로 추정되는 우물 두 곳이 발견된 바 있다. 이 우물은 15세기 세조 때와 17세기 숙종 때 각각 만들어진 것으로 19세기 초반 ‘궁궐지’와 ‘부용지’ 옆 비석인 사정기비각(궁내 우물의 유래 기록)등을 보면 세조 때 궁안 네 곳에 우물을 팠으나 임진왜란 등으로 파손된 것을 숙종 때 개보수하여 사용하다가 그 후에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 밖에 고려 태조의 할머니(龍女)가 팠다는 개성대정(開城大井)과 광명사정(廣明寺井) 그리고 양릉정(陽陵井)이 개성의 3대 우물로 전해지고 있고,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말기까지 국가의 기청제(祈晴祭)와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수 천 년 전에 팠다고 주장(?)하는 진주소재의 추새미와 몽고군이 일본 침략을 앞두고 병참 기지로 주둔지였던 마산에 팠다는 몽고정(몽고간장 유래) 등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인류는 처음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하천 및 지하수에서 얻었으나 점차 도시가 형성되고 인구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우물로는 양적 부족과 깨끗한 수질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되자 새롭고 위생적인 수량 확보가 시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로마에서는 BC 312-BC 305년에 산의 계곡수를 수로를 만들어 끌어들여 분수, 목욕탕, 공공건물 등에 급수하였으나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파괴되어 그 후로는 약 천년 이상 수도가 없었다. 그 뒤 16세기 말 런던에 대규모 수도가 건설되었는데 이 수도는 템스강의 물을 펌프로 퍼 올려서 시내로 급수하였고 1829년 최초의 모래여과 방식으로 정수 처리한 것이 근대 수도의 효시가 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경주 안압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상수도관과 하수도관은 토기관으로서 7-10세기경 통일 신라 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이후 조선 말기까지 다른 지역에서는 수도시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후 1908년 최초로 뚝섬 여과지를 만들어 서울시민에게 급수를 개시한 것이 근대적인 수도의 효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어촌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고 우물에 도르래나 두레박 대신 펌프를 설치한 곳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펌프 앞에는 항상 물이 가득한 물통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바가지가 둥둥 떠 있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물이 나오질 않아 물통의 물을 한 바가지 붓고 빠르게 펌프를 저어주면 다시 올라오곤 했다. 이것이 귀중하고 없어서는 안될 마중물이다. 시인 윤성학은 마중물을 이렇게 노래했다.

물 한 바가지 부어서/ 열길 물속/ 한길 당신 속까지 마중 갔다가/ 함께 뒤섞이는 거래요/ 올라온 물과 섞이면/ 마중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텐데..(후략)

세상에는 마중물처럼 일견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지만 그 의미와 가치가 큰 것이 많다. 근래 아프리카 및 동남아세아의 오지 부락에 정부, 종교단체, 자선사업가 및 연예인들까지 우물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는 평균 수명이 약 45세로 이것은 오염된 물에 의한 수인성 질병으로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에게 우물은 단순한 물이 아닌 바로 희망 그 자체이다. 우리는 잘 정수된 수돗물마저 외면하고 별도로 물을 사먹고 있지 않은가? 농부의 종자는 다음해 농사를 위한 마중물이고, 어부의 새끼 고기는 미래를 밝게 해주는 마중물이다. 마중물을 적게 붓거나 저어주는 시간을 놓치면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2011년은 FTA로 인한 개방화의 파고가 더욱 높아 질것이고,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불어 닥칠 기름 값의 고공 행진은 숨이 턱까지 찰 것이다. 정부가 적기에 부어줄 마중물이 어느 때보다 절실할 한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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