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일본이 중국을 침략(중일전쟁)하고 해외주둔 병력을 계속 확대해 나가자 미국은 1939년 미·일 통상조약을 파기하고 석유, 철강 등 전쟁 물자 수출을 중단함은 물론 제3국의 동참을 강력히 압박했다. 한편 일본은 1941년 육군 출신으로 강경파인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종전 후 A급 전범으로 교수형)를 수상으로 하는 군부 내각을 출범시키고 그해 12월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자 아·태 지역에서의 일본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하여 참전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전술적인 경험이 없던 미국은 연이은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밀리다가 태평양상의 미드웨이해전(1942년 6월 4-7일)과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후 사이판 상륙(1944년)과 이오지마 점령(1945년 3월)등에서 승리하고 일본 본토 폭격을 위한 태평양상의 항공기지를 확보한 후 급기야 1945년 8월 6일과 9일에 각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일본 천황은 8월 15일 항복을 선언하고 4년 8개월에 걸쳐 쌍방이 막대한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을 본 태평양 전쟁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기간 중 1942년 8월 7일부터 1943년 2월 9일까지 미 지상군(영국, 호주, 뉴질랜드 연합군) 6만 명과 일본 지상군 13만 6천명이 충돌한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전투는 양측에 엄청난 사상자(연합군 7천명, 일본군 1만 4천명)가 발생했고, 함선 29척(일본 38척) 침몰, 항공기 615대(일본 683대) 파손의 엄청난 손실이 컸던 전쟁으로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솔로몬 군도(Solomon Islands)는 남태평양 지역에서 세 번째로 큰 군도로 992개의 유무인도에 43만 명이 살고 있으며 종족으로는 멜라네시아인(95%), 폴리네시아인(3.75%) 그리고 소수의 마이크로네시아인과 아시아인 순이며 영국의 통치를 받아 영어와 67개의 공식 토착어가 사용되고 있다. 남태평양의 색다른 특징들로 말미암아 스쿠버 다이빙, 스노 쿨링, 낚시 등을 위하여 세계 각지에서 애호가들이 몰려들고 있다.

한편 태평양 전쟁의 중심 무대였던 탓에 밀림 속에는 아직도 항공기 및 탱크의 잔해들이 수도 없이 녹슬어 있고, 산호초와 진기한 고기떼가 헤엄치는 바다 속에도 전쟁의 잔인함을 말해주는 침몰된 함선의 잔해와 여기에서 떨어져 나온 함포들이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목재 자원은 이 나라의 주 세입원이나 무분별하게 벌채되어 15%이상이 벌거숭이 민둥산으로 변한지 오래됐고, 또 하나의 외화획득원인 참치가 회유해오고 있어 한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의 조업권 확보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1597년 남미의 페루를 점령했던 스페인인들이 새로운 땅을 찾아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1568년 커다란 섬을 발견하고 산타 이사벨(Santa Isabel)이라고 불렀으나 이후 기금 모집에 실패하여 다시 오지 못하고 약 150년간 잊혀진 섬으로 남아 있다가 영국 선장 필립 카타렛(Philip Cartaret)에게 발견된 후 영국은 19세기 자국 보호령으로 편입시켜 통치하게 되고,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왕의 이름으로 불렀다.

초기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는 가혹한 통치를 한 탓에 솔로몬 사람들의 백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독립 후에도 오래 지속되었다. 또한 1942년 일본이 과달카날(Guadalcanal)을 강탈하고 여기에 비행장을 세운 것이 계기가 되어 평화롭던 솔로몬 군도는 태평양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영국의 지배만큼이나 일본의 만행에 화가 나 있던 섬 주민들은 전쟁 내내 연합군에게 우호적으로 대했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방식은 독립(1978년7월 7일)후에도 쉽게 재기할 수 없도록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반면 미국의 통치를 받은 국가는 튼튼한 교량과 비행장이 남는다고 한다. 솔로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넓은 도로에도 교량 건설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협소하게 만들어 놓은 현장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지난 11월 2일부터 5일까지 한국원양산업협회는 2011년 어기 참치 선망 및 연승 연례협의회를 갖고 입어 조건에 합의하고, 이후 어기부터는 연승도 선망과 같이 협회를 협상 창구로 일원화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솔로몬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차관 제공 및 통조림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일회성이 아닌 양국의 상호 이익증진에 바탕을 둔 중·장기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단순 입어료 지불 방식에 의존하던 원양업계가 날로 심화되는 어업국 간의 조업권 확보 경쟁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장기전망까지 고려한 포석으로 아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이러한 방안을 점진적으로 다른 도서국들까지 확대한다고 하니 한국 참치산업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남태평양위원회(SPC)가 수역내의 과도한 어획증가와 인구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남태평양 수산업은 25년 이내에 붕괴될 것이며, 도서국 수산당국자들은 정책을 조정하고 미래 세대를 먹여 살릴 지속 가능한 수산업 개발을 보장할 수 있는 기구와 정책개발 기술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는 점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쿡 제도는 중서부 태평양 동부 공해에서 모든 형태의 참치 조업금지를 주장하는 등 갈수록 자원문제에 대한 논쟁은 뜨거워질 것이고 여기에 국제 환경단체도 가세할 것이다. 21세기 10년은 과거 10년과는 달리 빨라질 것이라는 S그룹 CEO의 진단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원양산업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국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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