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박일남은 부산 태생으로 1964년 데뷔 1집 앨범으로 내놓은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이하 생략)이라는 가사의 ‘갈대의 순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호소력 있는 그만의 저음으로 불러 4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창곡이다.

그는 1963년까지 유랑극단에서 무명가수로 노래를 불렀으나 1964년 킹레코드사에 전속되고 오민우가 작곡한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2절)이라는 앨범은 30만장이나 팔려 당시로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고 한다. 그가 2005년 공주의 한 암자에서 동양화 그리기에 몰두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그의 근황을 알지 못한다.

한편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 리골레토(L'Rigoletto)중 제3막에 등장하는 아리아 La donna e mobile(여자의 마음)만큼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은 곡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이태리의 베네치아에서 초연할 때 이 곡을 먼저 극장 측에 내주어 가곡으로서도 인정받은 후 초연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는 가사로 번역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눈물을 흘리며 향긋 웃는 얼굴로/ 남자를 속이는 여자의 마음/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여자의 마음 변합니다.. 아.. 변합니다.

이와같이 동양이나 서양이나 갈대의 순정과 여자의 마음을 갈대에 비유한 것에 공통점이 있으나 그 연유는 확실치 않다. 오히려 리골레토에서는 방탕한 바람둥이 영주(만토바)와 그를 사랑한 여인(질다)이 영주를 대신해 자기 아버지가 보낸 자객의 손에 목숨을 내던진다. 그리고 부인이 죽자마자 또 다른 여성 사냥에 나서는 영주를 볼 때 갈대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여야 함에도 역설적으로 아리아는 여자를 갈대로 묘사하고 있다.

갈대(Phragmites austrailis)는 벼과의 갈대속에 속하는 식물로 북극에서 열대 지방까지 호수나 습지 그리고 개울가를 따라 자란다. 깃털 모양의 꽃이 무리지어 피며 줄기는 곧고 매끈하다. 특히 가을 물가에서 날리는 갈대 이삭의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한방에서 쓰는 노근(盧根)은 갈대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으로 위 운동 촉진, 이뇨, 지혈에 처방된다. 최근에는 중금속과 같은 오염 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 물질을 자연적으로 정화시키고 있다.

옛날 한 가난한 농사꾼의 어린 아들이 열병에 걸려 아이의 아버지는 약방으로 달려가 약 처방을 요구했으나 비싼 약만을 권하는 바람에 약을 짓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울고 있을 때 구걸을 온 한 거지가 그 연유를 묻고 무작정 농부의 손을 끌고 저수지로 가 갈대 뿌리를 캐서 농부에게 주면서 이걸 달여 먹이면 열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갈대 뿌리 달인 물을 먹은 아이는 신기하게도 열병에서 해방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갈대 뿌리에는 당분, 고무질, 단백질, 무기염류 등이 있어 이뇨, 지혈, 발한, 소염, 해독, 진토(鎭吐)등의 다양한 약리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갈대 뿌리는 방사능 중독과 그로 인한 백혈구 감소증을 치료하는데도 효과가 있는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 준다고 한다. 특히 농약중독, 식중독, 알코올 중독에도 뿌리를 달여 먹으면 신통하리만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낀 순천만은 갯벌 28㎢(약 800만평), 갈대 밭 231만㎡(약 70만평)로 세계 5대 연안 습지 중의 하나로 연안습지 최초로 1975년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되고 발효된 람사르 협약(Ramsar Convention)에도 등록(2007말 기준 한국 전체 12개소, 107,109㎢) 되어 있다.

순천만은 갈대밭과 칠면초 군락지와 갯벌을 중심으로 염습지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여기에 서식하는 철새와 어패류(기수성)등이 잘 어우러져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갯벌(기수)에 사는 문절어, 숭어, 짱둥어, 전어와 게(농게, 밤게, 칠게)를 위시하여 희귀 철새(220종)들의 쉼터이기도 하고,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보호 받고 있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고 있는 온전한 곳이다. 이런 생태 환경 덕분에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을 찾는 관광객은 매년 30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필자 역시 최근(11월 3일)에 이곳에서 탐사열차를 타고 일대를 돌아보았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이곳에 미역 맛이 나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미역초라는 외래 식물이 번성하고 있음은 우려할 만한 일이었다. 갈대밭을 휘돌아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순천만으로 빠져 나가는 물굽이를 보면서 담계 이종원 시인의 갈대의 순정 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당신이 내게로 왔습니다/ 마음을 감추느라 몸은 야위어 가고/ 날개는 생기를 잃어 뼈대만 남고/ 백발만 날리고 있었습니다/ 신호를 보냅니다/ 스사삭 거리는 독백은 오히려 흐느낌입니다/ 헌신적인 당신을 사로잡고 싶어서/ 사랑에 빠지고 싶어서/ 그의 목울음은 갈색으로 쇠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어 자연생태공원의 품에 안겨 보고 별미라는 장뚱어 탕도 즐길 수 있다면 순천만 갈대의 은빛 군무가 장관을 이룬 모습과 함께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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