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서 바닷물 수온이 서서히 떨어질 무렵이 되면 알을 낳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물고기가 있다. 청어, 노래미, 물메기, 뚝지, 도루묵이 찬물을 즐기는 한류성 물고기이다.

겨울 바다에 한해성 어종이 회유하는 동해안에서 계절에 따라 나타나서 연안으로 몰려올 때 쉽게 잡을 수 있는 시기를 어부들은 놓치지 않고 잡고 있다. 도루묵은 심해성 어종으로 바닥이 모래나 진흙에서 살고 있으며 산란기인 11~12월이 되면 모자반 같은 해조류가 무성한 얕은 연안으로 몰려와서 산란하고 부화된 새끼는 3~4월경 연안에서 성장하고 5월이면 먼 바다를 향해 이동한다.

도루묵이란 이름이 지어지게 된 사연은 여러 자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근거 있는 얘기는 고려시대 왕은 난을 피해 동해안으로 피난했고 그곳에서 우연히 먹은 생선이 너무 맛이 있어 그 이름을 물으니 「목어」라 했다. 이 맛있는 생선을 겨우 목어라 부르다니 앞으로 「은어」라 부르라고 했다. 그리고 한양으로 환궁한 왕이 피난 시절 먹은 은어 맛을 잊지 못해 수라상에 올리라고 명한다. 다시 먹은 은어는 맛이 없었다. 산해진미에 익숙한 왕에게 그 맛은 옛맛이 아니었다. 왕이 다시 명한다.

「도로 목어라 해라」라는 얘기는 조선 정조때 이의봉이 편찬한 「고금석림」에 나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음식이 원산지에서 먹어야 맛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러나 도루묵은 동해 북부 현지에서 먹어보면 비로소 왕의 얘기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도루묵은 동해 현지에서 먹는 맛과 서울에서 먹는 맛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살은 희고 부드럽고 촉촉하여 배는 터질 듯이 들어찬 알은 금새 터질 듯이 탱탱하다. 실제적으로 동해안 횟집에서는 도루묵은 살아 있거나 냉장한 맛이 진짜 맛이 있는 것이며 냉동품은 살이 퍽퍽하고 알도 잘 익지 않고 딱딱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당시 동해안 생선을 한양에 운송하여 수라상에 올린다는 것이 제맛이 나왔을까 의심스럽다. 그러나 도로목의 맛과는 달리 나쁘게 지칭하는 말은 애쓰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 헛고생했을 때 「말짱 도로목」이라 하니 그리 좋은 얘기는 아닌 성 싶다.

국립수산과학원(동해수산연구소)에 의하면 도루묵 알이 백혈병 치료제를 추출한다고 일본에 수출되어 금도루묵이 되었던 적은 있다고 한다.

유년시절에 동해안 도루묵을 많이 먹고 너무 흔한 생선으로 잡어 취급을 받았지만 1970년대 수만 톤이던 어획량이 후반기부터 급격히 감소되어 86년부터 1만 톤 이하로 감소되고 있어 귀한 수산물이 되어 가고 있다. 어획량 감소 원인은 동해안 고수온 영향, 과도한 어획, 치어와 어란 채취 판매, 바다숲의 산란장 파괴 요인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국에 적절한 자원 관리와 보호 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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