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 가면극의 한 장르인 노(能)라는 것이 있다. 카마구라(鎌倉) 시대에 성립되어 오랫동안 전승되어 왔다. 노(能)는 가부키(歌舞伎), 고겐(狂言), 그리고 인형극인 분라쿠(文樂)와 더불어 일본의 전통 예술의 하나다. 얼굴을 희게 분칠하고 우스꽝스럽게 노래와 춤과 연기를 하는 가부키에 대하여는 일면식이 있으나 노에 대하여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노(能)는 무로마치(室町) 막부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58∼1408)’ 집정 기에 최전성기를 맞았으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이 일어나자, 막부가 해체되고 사무라이(待) 등 무사 집단이 해산되면서 후원자가 끊기자 상당한 변모를 가져왔고, 현재의 노는 그 역사가 약24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노(能)는 대별하여 덴가쿠(田樂)와 사루카쿠(猿樂) 두 종류가 있다. 우리가 흔히 어묵을 오뎅(おでん)이라고 하는데, 오뎅은 어묵으로 만든 탕(湯, 냄비 なべ)을 일컫는다. 그나마 이 오뎅의 기원에 대하여는 덴가쿠(田樂)의 덴(田)앞에 일본어의 존경어(尊敬語)를 만들 때 붙이는 접두사 오(お)를 붙여 오뎅이 되었다고 한다. 모내기철에 행하던 춤과 당시 먹었던 음식에서 유래되어 오늘날의 오뎅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우리의 어묵에 해당하는 말을 ‘가마보코(蒲鉾、포모, かまぼこ)라 한다. 카마보코는 일본 <古史記 712년>와 <日本書紀 720년>에 등장하나 이의 신빙성을 의심하는 전문가도 있고, 어묵의 기원은 우리나라라고 하는 이도 있다. 현대의 카마보코 형태로 발전하기 시작한 무로마치(室町)시대(1338∼1573)에는 메기 같은 생선살을 으깨서 꼬치에 끼워 구워 먹었고, 에도(江戶)시대(1603∼1867)부터 쪄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카마보코를 위완(魚 丸)또는 위가오(魚糕)이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boiled fish paste라고 한다. 조선에는 1700년대 역관(譯官)이었던 이표(李杓)가 1740년에 쓴 요리책 <송문사설 松聞事說>에 처음 등장한다. 일본에서 카마보코를 먹고 돌아와 일본 이름 그대로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고 표기했다. 가마보곶은 일본의 카마보코와는 다르게 물고기 살을 저민 후 돼지고기, 소고기, 해삼, 파, 고추 등을 다져 만든 소를 넣어 두루마리 말듯이 둥글게 말아 삶아낸 것을 썰어 먹었다. 그리고 조선조 이미 숙종 45년(1719년)년의 기록인 <진연의궤 進宴儀軌>에는 생선숙편(生鮮熟片)이라는 음식이 나오는데 재료로 대생선 3미, 감장 3홉, 녹말 1되, 5홉, 참기름 3홉, 잣 5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생선과 녹말을 넣었던 것으로 보아 생선어묵이라고 믿고 있다. 이후에도 요리 서에 생선문주(生鮮紋珠-進饌儀軌) 또는 태극선(太極膳-朝鮮料理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등장한다. 한편 현대의 어묵은 물고기살의 근원섬유(筋原纖維)인 단백질은 3%의 소금을 첨가하여 가열하면 응고하여 센 탄력을 지닌 겔(gel)을 형성한다. 이것이 어묵이다. 반면 어묵은 일본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무로마치 중기에 의식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의 어묵은 물고기 살을 으깬 것을 대나무 꼬챙이 끝에 꽂아서 숯불에 굽고 쪄서 만든 것이다. 그 모양이 부들(蒲-일본 말로 가마)의 이삭과 비슷하고, 이삭은 창(鉾)과 비슷하기 때문에 어묵을 카마보코(かまぼこ)라고 했다고 한다.

일본 오타루(小樽)에는 1904년 창업해 115년의 역사를 가진 카마보코(어묵)을 만들고 있는 ’가마에이(かま榮)‘ 공장이 있다. 삿포로의 주요백화점과 공항에도 매점을 가지고 있다. 공장 매장 앞에 있는 작은 등대에는 가마에이 독크(어묵, 핫도그)와 소프트크림을 팔고 있는 유명한 어묵 점포가 있다. 전국에 어묵 생산 공장은 약100여개가 있다고 한다. 그 중 45곳이 부산에 몰려 있다. 그 이유는 어묵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재료의 신선도 때문이다. 1950∼1960년대 자갈치시장에서 당시 리어카로 운반하였으나 30분이 초과될 시에는 신선도가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일대에 공장이 몰려 있었다. 어묵의 재료로는 새끼갈치(풀치), 조기새끼(깡치)를 주재료로 하여 명태, 갯장어도 들어가고, 요즘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베트남 등 수입 산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생선이 귀한 시기에도 생선살 함량이 65%(현재 80% 이상)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고 한다. 부산에서의 어묵의 역사는 1940년대(동광식품)라고 한다. 그 후 6.25로 피난민이 부산으로 밀려오면서 어묵의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1950년대 이후 부산 어묵은 봉래시장, 부평동시장, 동광동시장, 영주동시장 등에서 활기를 띄었다. 이후 시설의 근대화 과정을 거쳐 2012년부터 부산의 모든 어묵공장이 HACCP(안전관리인증보증) 인증을 받으며 맷돌로 갈던 시대를 마감하고 비위생적인 이미지를 탈피했다. 미국의 대학에서 제조업을 공부하고. 일본에서 현대식 어묵제조 기술을 습득한 분들이 어묵의 현대화에 뛰어들면서 한국의 어묵 공정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부산 현대식 어묵공장인 삼진어묵, 영진어묵 등과 더불어 CJ제일제당의 삼호어묵과 사조대림의 선(鮮)어묵 등으로 어묵의 고급화와 다양화(60여종)는 그 기원이 어디냐를 떠나 주식(主食)으로 때로는 간식이나 디저트 등으로 인식변화를 이끌며 어묵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1876년 부산항의 개항으로 많은 외래 문물이 쏟아져 들어 왔다. 1910년 문을 연 부산 부평동시장은 300평 규모에 300개의 점포로 시작할 때 어묵가게 3개 있었으나, 일본이 떠난 후에도 영업을 계속했었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성경(욥8:7)구절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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