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양어선 제2지남호는 102톤급 작은 배로 남태평양에서 태풍도 아닌 삼각 파도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참히 쓰러졌다. 1963년 12월 원양어업 초창기의 조업 행위는 절체절명의 모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동기생들은 그 시절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아픈 기억들을 승화시켜 원양어업의 한부분에 역사의 기록으로 정리하고 남겨두어야 한다는 한목소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삼켜버린 원양어선을 버리고 플라스틱 어구(부이)를 엮은 뗏목위에서 23명의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아무 대책 없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선장도 선박에 구명환(튜브)이 달랑 4개 밖에 없으니 수영 잘하는 네사람만 선발해서 겨드랑이에 구명환을 끼고 보이지도 않는 섬을 향하여 헤엄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진맥진 처지면서 먼저 앞서가기를 권했다. 결국 2사람만 10시간 만에 남태평양 작은 섬「라카한카섬」에 도착하자 실신해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젖은 옷에 추위가 엄습하고 겨드랑이는 헤엄치면서 구명환에 쓰닥거려 벌겋게 부어올라 쓰라림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럴 즈음 머리에 깃털을 꽂은 섬에 부족(토인)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우리 두 사람을 야자 잎으로 덮인 원두막집으로 데려가서 쉬게 했고 계란과 열대과일을 끼니로 때우면서 5일간을 정신없이 지냈다. 드디어 제7지남호가 와서 생사를 확인하고 돌아갔으며 다시 5일이 지난 후에 동아수산에 제2동아호를 이끌고 김재철 선장(항해사는 동기생 조남직)이 구조하면서 6시간 거리에 있는「오니이끼」섬에 도착시켰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상 항공기로 2시간 이상 걸리는 사모아 전진기지에 도착하였다. 얼마나 힘들고 생명을 건 사투였는지 대장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 시절 원양어선 선장으로 문인리를 구조하면서 활약한 선장이 놀랍게도 오늘의 수산인으로, 기업인으로 대성한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님이라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훌륭한 선원은 험한 파도가 만든다는 옛 속담도 있지만 어려운 시절에 ‘성공을 꿈꾸려면 목숨을 걸어라 그래서 실패하면 운명을 원망해라’는 명언같이 그렇게 꿈을 꾸었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해도 아무리 깊은 바다라 해도 헤쳐나갈 수 있는 의지 하나로 버텨왔다. 험한 풍랑 속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동기생 문인리는 거제섬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헤엄 잘 치고 신기하게 바다가 무섭지 않다는 신념으로 통영수고(어로과)를 거쳐 부산수대(어로과)에서 뱃사람으로 자질을 키워온 진정한 뱃사람. 수산인으로 불러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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