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문학 교류의 일환으로 3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4월 18일 인천공항에서 1시간 반 만에 중국 대련에 도착하였다. 첫날은 대련 외국어대학에서 대련 외국어대학총장 대련 총영사와 조선족 문학협회장의 축사 속에 문학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중국측에서는 우리 작품들을 미리 받아 중국어로 번역하여 중국 작가들과 같이 단행본으로 자료 책을 꾸몄고 우리는 순서를 기다려 외국대학원생(한국어과 중국인)의 통역자와 작품 낭송을 하면서 발표회를 갖게 되었다.

나는 『조기보다 굴비가 더 알려져』라는 신문 주제로 발표에 앞서 설명하기를 나는 수산학을 전공하고 수산행정 최고기관에 근무했고 10여 년간을 수산인신문에 칼럼을 쓰는 자칭 수산전문가로서 수필문학속에 수산 작품을 접목하기 위하여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하였다. 발표가 끝나자 대련이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어 수산작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 조선족 중견 작가이자 교수는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며 교류를 원한다고 했다.

세미나가 끝나고 아시아에서 제일 큰 성해 광장 노호타 공원 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다음 날은 일본 러시아 열강들의 침략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그 시절 발전했던 도시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러시아거리 동양의 베네치아라 부르는 이태리풍의 건물들이 있는 해안에 요트를 타고 멀리서 바라보기도 했다. 대련에서 1시간 반 거리에 인접한 도시 여순에서 벚꽃 축제장에 가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순 감옥 현장은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 독립투사 안중근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 정치가이면서 우리나라 찬탈의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후에 여순 감옥으로 이송시켜 3년간 수감하고 1910년 3월에 여순 감옥에서 사형 당했지만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슬프고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여순 감옥은 8000평 규모에 2000명의 인원을 수감할 수 있는 큰 감옥을 구석구석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았다.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역사 앞에서 중국인들조차 존경 받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옥사 안에 따로 마련되어 있어 그의 서품과 사진 ,좌상 동상 앞에서 우리 일행은 머리 숙여 묵념을 드리기도 했다.

대련에서 여순으로 가는 바닷가 연안에는 해양목장이 펼쳐져 있고 바다에 수놓은 듯한 양식장에는 이곳의 특산물 해삼 ,가리비, 다시마가 양식되고 있음은 온화한 기후와 얼지 않는 바다가 큰 몫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어인 부두와 작은 어촌 마을에는 시커먼 어선만 대여섯척이 정박해 있을 뿐 18km의 해안도로를 개발하고 관광지 조성으로 어촌 마을은 외곽도시로 이전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짧은 일정에 나이가 들어 힘들고 버거운 여행이었지만 나름대로 보람과 큰 의미를 안겨준 여행이었다고 오래오래 여운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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