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원양협회는 원양어업진출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산에서 기념식과 기념조형물 제막식을 성대히 거행해 원양어업 사록에 한 획을 긋는 뜻 깊은 기록을 남겼다. 원양어업 사록과 관련한 대서양에 잊을 수 없는 라스팔마스 섬은 원양어업의 중요한 전진기지였다.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동부에 있는 섬 <라스팔마스>는 한때 우리나라 원양어업 진출의 발판이 되는 중요한 섬이었다.

1883년 개항 이래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대륙을 있는 삼각무역에 중계항으로 발달되었고 농수산물 가공과 조선업 등 공업이 성한 섬으로 알려졌다. 기후는 계절변화가 없는 온화하고 해안경치가 뛰어난 아름다운 관광지이며 휴양지이다. 이 섬의 인구는 81만 명에 교민 수는 약 1,000명 정도로 교민들은 대부분 수산업에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나 최근에 이르러 상업과 요식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특히 주변 카나리아 7개 섬은 세계 유수의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나라 원양어업이 참치 연승시험 조사선 <지남호>가 1957년 6월 29일 부산항을 출발하여 인도양으로 출항하면서 원양어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60-70년대 경제발전에 초석을 다지는 데 원양어업은 큰 역할을 했으며 해외시장 개척과 본격적인 수산물 수출로 수산해양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시절 원양어선은 황금어장을 찾아 이역만리 세계를 누비면서 최고의 어장이라는 전진기지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를 중심으로 대서양에서 어업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몹시도 열악한 원양선원들은 모험선 같은 어업활동으로 상당수가 유명을 달리했고 그 유골 301기가 아직도 7개국 묘지에 잠들고 있다니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디고 생각하던 터에 얼마 전 원양선원 유골(5기)이 라스팔마스와 테네리페에서 인천공항을 통해 고국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가까운 동창생이 오래 전에 수산청을 그만두고 동원산업 라스팔마스 기지장으로 활동하는가 하더니 어느 새 원양어선을 매입하여 직접 운영하기도 했지만 뜻한 대로 원만치는 못했다. 그러나 그곳에 살면서 1년에 한두 번 고국을 찾을 때 좋은 날씨에 수산물과 과일이 지천이라면서 살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다고 자랑하지만 의료수준이 우리나라에 비해 빈약하다며 한국에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며칠 전 그 친구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일간, 나는 기관지가 약한 탓에 한국에서 미세먼지 폭탄을 맞고 감기에 천식으로 두 달 동안 병원을 다녔는데 라스에 오니 공기가 좋아서인지 몸이 좋아진 것 같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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