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렵시대에는 사냥으로 얻은 동물로 허기를 채웠다. 또한 바다에서 작살이나 꼬챙이로 찔러 물고기도 잡아먹었다. 그러나 먹고 남은 육류나 물고기는 실온에서 하루를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햇볕에 말리는 건조법이 등장했다. 이것이 인류최초의 위대한 발명이자 발견이었다. 그러나 건조 한 가지 방법만으로 잉여물을 처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후 인류는 제염기술의 발달로 소금을 얻게 되자 절임의 기술도 배웠다. 따라서 채소를 절여 김치류를 만들었고 어패류를 절여 젓갈을 만들었다. 중국의 <제민요술>에 한무제(漢武帝)가 동이족(東夷族)을 쫓아 산동반도에 이르렀다. 어디선가 코를 자극하는 냄새가 나는지 추적했다. 결과 어부들이 항아리 속에 생선 내장을 넣고 흙으로 장기간 덮어두었다가 먹는 조미료임을 알았다. 중국 문헌은 2,500년 전인 BC 3∼5세기경에 발간된 이아(爾雅)라는 자서(字書)에 젓갈이 등장한다. 또한 유학의 기본 예법서인 <주례 周禮>에도 젓갈을 뜻하는 해(醢), 지(鮨), 자(鮓), 장(醬) 등의 문자가 발견된다.(鮨,鮓는 일본에서는 すし를 뜻함) 중국에 현존하는 농업기술서인 <재민요술 齋民要術>에 젓갈의 제조방법은 물론 젓갈의 종류, 계절에 따른 숙성기간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선조들이 고대 중국인들 보다 훨씬 이전에 젓갈을 만들어 먹은 창의적인 산물이다. <사서대전, 四書大全>에 BC 600년부터 황하 하류 및 산동반도, 요동반도 등 발해만 일대와 동부해안 지대에서 중국의 문화와 다른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던 동이족이 우리 한민족의 시조였다. 따라서 동이족으로부터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걸쳐 현재까지 맥을 잇고 있는 고유의 음식이자 식문화인 것이다. 삼국시대부터는 젓갈이 발효기술의 발달로 채소나 어패류를 이용한 다양한 식감(食疳)의 젓갈류와 된장, 간장, 장아찌류, 술 등의 발효음식과 절임 음식이 개발된 시기이다. 삼국 중 고구려는 누룩과 맥아를 발효시켜 술을 빚는 양조기술을 중국으로 전파시킬 만큼 발효음식 제조기술이 뛰어났다. 290년경의 <삼국지> 고구려전(高句麗全)에 발효식품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뜻으로 ‘자희선장양(自喜善藏饟)’하는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백제인들은 맹독성 복어로 젓갈을 담가먹을 정도로 젓갈류의 발효기술이 뛰어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헌상 기록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이 1145년에 완성한 <삼국사기> 신라본기다. 신라 신문왕 8년(683년)에 제7관등(官等) 서열의 김홍문의 작은 딸을 왕비로 맞을 때 비단 151수레/ 쌀, 포, 젓갈 135수레/ 조 150수레의 예물 품목에 장(醬)과 함께 젓갈류를 뜻하는 ‘해(醢)’가 기록되어 있어 당시 궁중의례 음식으로 젓갈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후에도 중국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의 <고려도경 高麗圖經>에 고려인은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사용하던 음식’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젓갈의 종류가 150여 가지로 담수어, 해산어는 물론 패류와 갑각류까지 이용하여 젓갈을 만들었다. 소금에만 절이는 염해법(鹽法)과 젓갈 재료에 소금과 누룩, 술을 혼합한 독특한 방법의 어육장해법(魚肉醬法)이 있었다. 식해의 제조법도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의약서인 <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에 실려 있다. 고려시대에 젓갈 제조가 발달한 것은 <도염원 都鹽院>이라는 소금 전매제 정책 때문이다. 백성들에게도 판매할 정도로 소금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조선조 헌종(憲宗 1827∼1849) 때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쓴 <농가월령가 農家月令歌>에 새우젓을 넣은 계란찌개를 상에 올리면 ‘큰 가마의 밥이 부족했다’는 말에서 역설적이긴 하나 ‘밥도둑’이란 말이 유래됐다고 전한다. 이외에도 <산림경제 山林經濟>,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 <음식지미방 飮食知味方>, <규합총서 閨閤叢書> 등 조선시대 관선문헌과 민간문헌에 그 종류와 제조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반면 젓갈은 유럽의 로마제국에도 ‘가룸(Garum)’이라고 해서 온갖 요리의 맛을 돋 구기 위해 사용했다. 현재 이태리와 스페인에서 즐겨먹는 앤쵸비도 멸치젓갈의 일종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케첩도 원래 생선 젓갈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옛날 중국에서는 하사품인 인육젓갈(人肉醬)도 있어 부하들에게 반역이나 국고를 횡령하지 못하게 하는 경고 상품이었다. 전근대 문헌에 토해(兔醢-토끼고기), 녹해(鹿醢-사슴고기), 어해(魚醢-생선), 탐해(醓醢-소 어깨살), 치해(稚醢-꿩고기)등의 식해도 있었다고 한다. 동아시아 국가들도 고유의 젓갈을 만들어 먹어왔고 역사도 장구하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진 거북이 뒷다리 젓갈, 오리 젓갈, 잉어 젓갈 등 우리가 생소한 이름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특유의 풍미는 우리 민족만의 독창적이고 고유한 감각으로 발효시켜낸 선조들의 지혜로운 전통 음식인 것이다, 여기에 섬세한 손 기술까지 더해져서 진귀한 보물이 만들어졌다. 국내 3대 젓갈 시장으로 강경, 광천, 곰소를 꼽고 있고 저마다의 특색 있는 젓갈이 개발되어 왔다. 반면 어패류 젓갈이 발달되지 않은 나라는 육류저장 식품으로 염장을 한 햄(스팸류)이 발달했다. 지금 우리는 삼저<三低-저염(低鹽), 저당(低糖), 저지방(低脂肪)>와 일고<一高-高蛋白)>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 젊은 층에서는 젓갈류와 김치까지도 기피하고 있다. 젓갈은 썩음과 삭음의 절묘한 경계의 맛을 감각으로 가려낸 과학적인 발효식품이다. 과용할 필요는 없으나 젓갈은 기다림의 결정체다. 젓갈은 영양가 만점으로 우리 식문화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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