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후예인 유대민족(猶太人, Jew)은 기원 전 18세기 경 ‘가나안(팔레스타인, 시리아)’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옹립하고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애급(이집트)에서의 고된 노예 생활을 했다. 모세의 지도하에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40여 년간을 네게브 광야에서 고통을 겼었고,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알렉산더‘ 왕에게 정복당하기도 했으며 로마의 침공을 받아 도시가 파괴되고 유대인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1918년에는 영국에 의해 팔레스타인 지역이 점령당했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했고, 4차에 걸친 아랍연합국가들과의 ’중동전쟁‘에서도 승리했다. 이스라엘의 인구 통계에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인구가 약 1천8백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히틀러가 집권한 나치독일의 ‘홀로코스트’로 약 1천2백만 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 134개국에 약 1천4백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이스라엘에 약 600만 명, 미국에 약 580만 명, 유럽의 여러 국가에 약 240만 명과 라틴아메리카에도 약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1948년 5월 14일에 건국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조건 없이 현재 이스라엘에 거주하고 있는 국민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는 시민권을 허용하고 있다. 이를 일명 ’귀환법(歸還法) 또는 귀향법(歸鄕法, Law of Return)‘ 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은 이 법을 통하여 많은 수의 유대인이 이스라엘로 귀향하게 만들었고, 모국이 어려움을 당할 때 청년들은 귀국하여 군대에 자진 입대케 하는 애국심의 기초가 되고 있다. 유대인들은 영국 청교도 혁명(올리버 크롬웰)과 명예혁명(윌리엄 3세)때에 거금을 지원한 결과 1694년 ’잉글랜드은행’을 설립함과 동시에 런던의 금융업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도 ‘로스차일드은행’을 설립하는 등 유대인의 지배 하에 있는 금융센터를 통하지 않고는 런던-프랑크푸르트-뉴욕을 연결하는 글로벌 금융결제를 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인 MGM,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등 전부가 유대인 소유이다. 역시 미국의 3대 TV(NBC, ABC, CBS) 그리고 통신사(UPI, AP)가 유대인 세력 하에 있다. 전 세계 고급 커피점을 장악한 스타벅스(하워드 슐츠), 헤지펀드의 거물(조지 소로스), 헨리 키신저, 아인슈타인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도 유대인이다. 특히 미국 100대 기업의 40%가 모두 유대인 소유이다. 이스라엘은 전술한 배경 하에서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으나 번영을 누리고 있다.

유대인들은 중국 송나라 시대에 서역을 경유하여 중국에도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이 사용한 성씨는 이(李), 장(張), 안(痷), 진(金)씨 등이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반면 중국인들은 유대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외에 거주하는 인구가 많다. 우리가 화교(華僑, overseas chinese)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동남아(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를 중심으로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에 약 4천만 명이 살고 있다. 제2의 유대인이라고도 부르는 이들은 거주 국가에 예외 없이 ‘차이나타운’을 형성하여 단결하고 있다. 축적한 자본을 매개로 그 나라의 정치, 경제에 큰 힘을 미치고 있고, 본국(중국, 대만)에 송금하는 막대한 외화는 조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초기 노동자로 해외에 송출되었으나 이후 요식업으로 업그레이드 하였고 자본을 쌓은 것이다. 그리고 자본과 함께 귀향하는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의 시인 도잠(陶潛, 365∼427)은 우리에게 도연명(陶淵明)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말년에 당시의 암울한 사회현실과 계급의 모순 등에 싫증을 느끼고 관직생활(彭澤縣令)을 청산하고 귀향하여 전원생활을 하였다. 그는 귀원전거(歸園田居, 전원으로 돌아와)란 연작시에 그의 평담자연(平淡自然)한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갇힌 새는 옛 숲을 그리워하고, 연못 속 물고기는 옛 연못을 생각하는 법(羈鳥(기조)戀舊林, 池魚思故淵)(其一), 뽕과 삼이 날로 자라고, 내 땅도 날로 넓혀지는데(桑麻日已長, 我土日已廣)(其二), 새벽에 일어나 거친 잡초를 뽑고, 달과 함께 호미 메고 돌아온다(晨興理荒穢, 帶月荷鋤歸)(其三), 갓 익은 술을 거르고 닭 한 마리 잡아 이웃을 부르네(漉我新熟酒 只(척隻)鷄招近局)(其五)”라고 전원으로 돌아와 보니 논과 밭이 폐허가 되고 아는 사람들도 죽었지만 그래도 우울과 번민의 구름이 걷힌 환희의 아침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조국이 좋고 인간의 귀소본능은 고향이 한없이 좋다. 그러나 지금의 농어촌은 뽕이나 삼나무를 심거나 통발만 가지고 생계를 유지하던 시대는 지났다. 현대의 농어촌은 영세 자본에 시달리고 한편으로 고령화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나라 해외동포 720만(중국 258만, 미국 223만 등)은 우리의 자산이고 국력이다. 현재 농·어촌에 가보면 가족 중 최소 한 명 이상은 서울이나 대도시에 거주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귀농. 귀어귀촌 인구는 적은 숫자에 불과할 뿐더러, 농·어촌으로 송금되는 액수가 이 지역 발전에 기여하기는 턱 없이 부족하다. 중앙이나 지방정부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 유대인이나 화교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삶의 철학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이스라엘의 ‘귀환법 또는 귀향법’과 같은 독립적이고, 파격적인 ‘귀어귀촌특별법’ 제정이 나라 안에서도 필요한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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