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의 촉수(觸手)를 보통 다리라고 부른다. 촉수가 하는 역할이 주로 팔의 구실을 하므로 기능상으로는 팔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리의 길이가 한치(一寸, 3.03cm)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한치는 다른 오징어와 비교하면 기형으로 태어난 듯 보인다. 그러나 다리 10개 중 8개는 3cm정도로 짧으나 양쪽 끝에 자리한 두 개의 다리는 일반 오징어와 같이 길다. 덕장에 걸어 말리는 그 모양이 가관이다. 그러나 긴 다리 두 개는 평소에 숨기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날 때 쭉 뻗어 잡아채는 촉수로 사용되고, 산란기 구애활동으로 교미를 할 때 사용되는 촉완(觸腕)이다. 한치의 표준명은 창오징어(Sword tip squid, けんさきいか-日, 一寸-中)이나 보통 한치, 제주한치, 한치오징어라고 부른다. 그러나 화살오징어라고 부르는 곳도 있으나 잘못된 표현이다. 한편 일반 울릉도 오징어를 보리밥이라 한다면 제주 한치는 쌀밥으로 그 맛은 일품이다. 한치의 제철은 6-9월인 여름철로 제주도 연근해와 남해안(거제도, 진해 등)이 주요 서식지로 다른 곳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다만 강원도 지역에서도 한치가 잡히나 몸의 상태가 약간 달라 제주도 한치와는 종류가 다르다.

자산어보에는 오징어와 꼴두기 그리고 한치를 묶어 ‘종잇장처럼 얇은 뼈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고기라는 뜻’의 고록어(高祿魚)라고 표현하고 있다. 1980년 이전에는 오동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에 문어, 방어, 놀래미 등을 미끼로 사용했다. 1980대 중반부터 제주의 성산포 수협을 중심으로 오징어 채낚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오징어류의 주광성(走光性)을 이용하여 집어등 방식이 도입되면서 한치 생산량도 덩달아 올라갔다. 제주도에서는 한치 잡이를 낚는다고 하지 않고 붙인다고 표현한다. 수십m에 이르는 줄에 묶인 미끼를 한치가 삼키는 것이 아니라 다리로 미끼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가끔 바다에서 한치 잡이를 하다보면 돌고래가 한치 무리를 습격하는 장면을 본다고 한다. 한치들은 돌고래에 대항하기 위하여 먹물을 자욱하게 내뿜는 전술로 대항해 보지만 먹물이 다 소진되고 나면 역부족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여름철 해산물 보양식으로 EPA, DHA가 풍부한 고등어, 비타민 A와 D가 풍부하고 옛날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다는 민어, 타우린의 보고라는 문어, 스태미나의 원천이라는 붕장어 그리고 오징어도 낚지도 아닌 것이 맛이 최고로 타우린의 보고라는 한치를 꼽고 있다. 한치의 대표적인 요리 방법은 한치 물회다. 선도가 좋은 한치를 내장과 먹물을 제거하고 얇게 썰어 준비된 양념과 함께 시원한 물이나 동치미 국물에 넣어 조리하면 그 맛은 일품이다. 따라서 여름철 제주도의 별미이나 요즘은 육지에서도 한치 물회를 먹을 수 있다. 상당량의 베트남 산 냉동 한치가 수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과 유대교 신자들은 교리 상 오징어류를 먹지 않는다.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지 못하도록 성경(구약 레위기)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그리스인들은 고대로부터 오징어를 먹어왔다. ‘에게해’는 원래 오징어자원이 풍부했다. 신선한 올리브유를 바른 후 숯불에 구워먹었다. 한편 그리스의 영향이 강한 동부 지중해 지역 국가들도 오징어를 먹는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역시도 중세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오징어 먹물이 특효약이라는 속설이 퍼지며 먹물 채취를 위하여 잡게 되었고, 이 후 몸 전체를 먹게 되었다. 말린 오징어는 한국과 일본(するめ)만 먹는다. 한자로 건어물을 표시하는 상(鯗)자는 원래는 말린 오징어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 되었다. 잉크가 개발되기 전 까지는 서양에서는 오징어 먹물이 기록물에 사용되었고, 물감으로도 사용되었다. 먹물색은 세피아(Sepia)라고 하며 엄격히 말해 갈색 계통이다.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가에 가면 워싱턴이 특수 처리된 오징어 먹물로 쓴 편지가 보존되어 있는데 그 냄새가 지독하다. 오징어 먹물은 1년가량 지나면 말라 없어지기 때문에 믿을 수 없거나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가리켜 ‘오징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아직 복근의 미발달로 인한 유아의 통통하고 매끄러운 배 모양이 오징어 같다며 오징어 배(いか腹)라고 부른다. 오징어의 일부 종은 변장술에 능하다. 짝짓기에 밀려난 작은 수컷은 잠간 다른 곳에 갔다가 몸 색 갈과 행색을 암컷처럼 변장하고 돌아와 진짜 암컷에 유유히 접근하여 짝짓기에 성공한다고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밝힌 바 있다.

필자가 사모아 수산관으로 사모아 상원의원의 별채에 세 들어 살고 있을 때 선물 받은 마른오징어를 불에 굽다가 수모를 당했다. 집주인인 상원의원은 오징어를 불에 굽는 냄새가 시체를 태우는 것과 너무 흡사하다고 했다. 즉시 굽기를 멈추고 사과한 기억이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오징어 다리’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양다리를 걸치기보다 더 심한 표현으로 상당한 바람기를 지니고 있는 바람둥이에게 쓰는 표현이다. 해외에도 한치 자원은 있으나 제주도의 한치와 비교할 수 없다. 투명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은 한번 먹어본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한다. 또한 백지장처럼 하얗게 건조된 한치는 울릉도 건오징어와 견줄 수 없는 맛이다. 다리가 짧아 슬픈 한치의 반전이다. 중국 속담에 ‘선적불흘 흘엄적(鮮的不吃 吃醃的)’, 신선한 것은 안먹고 절인 것을 먹다). 좋고 나쁜 것을 구분 못한다는 뜻이다. 한치 물회가 더욱 생각나는 올 여름 찜통 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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