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 Hemingway)는 평소 쿠바를 사랑했고, 자주 방문하여 아바나 동쪽의 작은 어촌마을 “코히마르”에서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를 즐겼다. 이후 1939년 쿠바에 정착했다가 1960년 쿠바혁명 직후 미국으로 돌아온 후 이듬해 엽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신문기자 또는 의용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그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노인과 바다’라는 3편의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특히 1952년 발표된 단편인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1953년에 퓰리처상,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헤밍웨이가 잘 알던 쿠바인 어부 ‘그레고리오 푸엔데스(Gregorio Fuentes)’가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하여 노인과 바다를 썼다고 한다. 푸엔데스는 104살까지 살다가 2002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회고록에 의하면 그는 실제로 53일 동안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54일 되는 날에 6마리를 잡아서 귀가하던 중 상어 떼를 만나 모두 잃고 돌아왔다는 평범하고 간단한 이야기를 말해준 것 뿐인데 이를 들은 헤밍웨이가 새로운 소설로 창작하여 이 소설이 대박이 났다. 이후 헤밍웨이는 그를 찾아가서 억지로 2만 달러를 주었다고 한다. 1950년대 이 돈은 엄청난 거액이었다. 당시 미국의 자동차극장(drive in theater)의 표 값이 불과 30센트 정도였다고 한다.

1958년 ‘스펜서 트레이시’가 ‘산티아고’ 역으로 출연한 영화 역시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다. 산티아고(Santiago)는 멕시코 만에서 밀가루 포대를 기워서 만든 조그만 돛배(skiff)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84일 동안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절망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어촌마을에서 한 때는 잘 나가는 선원이자 베테랑 어부였다. 그러나 그는 매일 매일을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고 낙담하지 않고 기다렸다. 85일이 되는 날에 그는 낚시 줄에서 큰 울림을 느꼈다. 그는 경험상 큰 놈이 걸렸다고 직감했다. 그러나 큰 놈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노인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큰 놈과의 대결을 마음 속으로 선언하고 낚싯줄을 힘껏 당겼으나 오히려 끌려다녀야 했다. 노인의 손은 스치는 낚시 줄에 손바닥은 갈라져 피가 흐르고 경련까지 일어났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노인은 물고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얼마 후 노인과 줄다리기를 하던 큰 놈은 결국 그의 몸을 공중으로 솟구쳤다. 노인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striped marlin, blue marlin)였다. 청새치는 최고 시속 120km를 자랑하고, 무게 500kg, 길이 6m까지 자란다는 바다의 괴물이다. 이런 괴물을 몸무게 50kg 정도의 허약한 노인의 체력으로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밤바다의 추위와 낮의 뜨거운 햇볕, 맛있는 날치와 구역질나는 만새기를 날것으로 겨우 면한 허기, 한 방울도 남지 않은 식수통 등 최악의 고통 속에서도 노인은 낚시 줄을 놓지 않았다. 노인은 꼬박 이틀간 잠도 자지 못하고 청새치와의 사투 끝에 청새치를 굴복시키고 돛배 옆에 매다는데 성공했다. 큰 성취감과 함께 귀가하여 자기를 업신여기든 많은 어부들에게 뽐낼 것을 생각하니 환희에 넘쳤다. 그런 생각도 잠시 청새치 몸에서 흘러나온 피 냄새를 맡고 일차적으로 ‘덴투소(청상아리)’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청새치의 살은 너덜너덜 해지기 시작했다. 이차적으로 ‘갈라노(장완흉상어)’의 마무리 공격이 시작되었다. 노인은 배 젓는 노가 부러지는 줄도 모르고 상어 떼를 내려쳤다. 노인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청새치의 살점은 하나도 남지 않아 뼈만 앙상했고, 역시 뼈만 앙상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죽음에 맞서 사투를 벌이는 불굴의 용기와 인내심으로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내일을 위해 돛만은 둘둘 말아 어께에 걸치고 통나무집으로 돌아간 노인은 젊은 시절의 사자 꿈을 꾸며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쿠바는 지난해 54년 만에 미국과 국교정상화로 헤밍웨이 흔적 복원에 힘쓰고 있고, 헤밍웨이가 자주 갔던 아바나의 단골 술집 ‘풀로리다따(Floridata)’에는 날 해산물과 과일을 곁들인 ‘노인과 바다’라는 요리가 고가임에도 잘 팔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서울 도심에서 열린 귀어귀촌 박람회는 귀촌 희망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어촌 활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다. 지금의 어촌은 60대 이상이 약44%이며, 70대 이상도 약19%나 되어 노령화 현상이 심화되어 가고 있어 어촌동력이 계속 저하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2015년의 어가인구 또한 12만9000명으로 2010년(17만1천명) 대비 24.9% 감소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젊은 피의 수혈이 시급하다. 도시를 떠나 어촌에서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 어촌으로의 귀어는 농촌으로의 귀농보다 제도적이나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말한다. 어촌은 어업이나 양식을 할 경우에 허가나 면허제도로 제한되어 있고, 어촌계와의 문제 등도 간단치 않다. 정부가 창업자금과 주택융자금 등의 기초적인 지원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특례를 두거나 세세한 문제까지 해결해 주어야 귀어귀촌이 성공할 것이다.

우리의 어촌문학은 너무나 빈약하다.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백경(멜빌), 로드 짐(콘라드), 보물섬(스티븐슨)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작품이 많고, 작가 멜빌과 콘라드는 선원 출신이기도 하다. 우리 농촌문학작품도 토지(박경리), 상록수(심훈), 흙(이광수), 흙의 노래(이무영) 등의 유명 작품이 많다. 반면 어촌이나 바다를 배경으로 한 어촌문학은 만선(천승세), 들끓는 바다(백시종) 등이 있으나 빈약하기 그지없다. 우리 어촌에도 노인과 바다를 능가하는 소재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다양한 업종에 종사한 경험이 있는 귀어귀촌 자들이 많이 나와 갯벌문학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노인과 바다의 전편을 관통하는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라는 교훈이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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