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극장가에서 화제작이었던 ‘바다 한가운데서(In the Heart of the Sea)’에는 거대한 고래가 출현한다. 향유고래(香鯨, 抹香鯨, Sperm Whale, Cachalot)로 이빨고래무리(齒鯨類) 가운데에서 가장 덩치가 크다. 유럽에서 이민을 왔던 백인들은 17세기부터 미국 매사츄세츠에서 남쪽으로 50Km 떨어진 넨터킷 섬을 중심으로 포경산업을 일으켰다. 당시 미국의 경제는 육지에서는 목재나 금광산업 그리고 바다에서는 포경산업이 활발했다. 주로 사냥의 대상이 된 고래는 향유고래로 큰놈 한 마리를 포획하면 만 리터 이상의 고래기름(鯨油)를 얻을 수 있었고, 이 경유는 기계 산업의 동력이 되었을 뿐더러 향유고래의 내장에서 보향제(保香劑)인 용연향(龍涎香, ambergris)을 추출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소재가 된 ‘에식스’호는 1819년 여름 넨터킷 섬에서 출항하였으나 15개월 뒤에는 남태평양에서 성난 고래의 공격을 당하면서 238톤의 배가 단 10분 만에 침몰하였다. 배를 공격한 고래는 30m에 80톤의 향유고래로 살아남은 선원 21명이 3척의 구명보트를 타고 94일간 7,200km를 표류하면서 최종 8명만 구조되는 실화를 그렸다.

에식스호의 비극은 인간의 욕망을 위하여 마구잡이로 고래를 사냥하던 포경선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와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선장과 흙수저 출신의 항해사와의 갈등을 비롯하여 폭풍우, 배고픔, 절망 속에서 사망한 동료의 인육을 먹으면서까지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와 추악한 이기심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1851년 쓰여 진 후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문학사의 불후의 고전으로 불리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Moby Dick)’이 에식스호의 실화에서 영감을 얻어 쓰여 진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모비딕이 흰 고래에 한쪽 다리를 잃은 포경선 ‘파쿼드’호의 선장 에이햅의 흰 고래(白鯨)에 대한 복수극이고 종말이 파멸인 반면, ‘바다 한가운데서’는 제한된 식량과 식수, 고독과 배고픔에 대한 자기 양심과의 사투를 그려 자연에 대한 경외심(敬畏心)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한계를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향유고래의 커다란 머리의 경랍기관(鯨蠟器官)에 있는 밀랍성질의 기름은 절대영도에서도 얼지 않는다. 거대한 사각형 머리가 특징으로 머리가 몸 전체의 1/3(학명의 P. macrocephalus 그리스어로 머리가 크다는 뜻)을 차지하고 뇌의 무게는 약8kg정도나 된다. 향유고래기름은 고급 알코올과 납이 주성분으로 식용에는 적당하지 않아 공업용 원료로 사용됐다. 전성기에는 약 2만4천 톤의 고래 기름을 생산하였다니 인류의 문명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고래가 희생되었는지 짐작이 간다.

1712년 향유고래의 기름이 양초의 원료로 사용되면서 에너지 전쟁이 가속화하기 시작했다. 빛에 대한 인류의 열망은 고래 기름 램프와 전구로 진화하면서 문명을 일궈왔다. 향유고래기름은 석유와 전기가 개발되기 이전까지 등잔, 양초, 등대, 도시의 가로등 불빛을 밝히는 재료로 사용되었고, 19세기 초 가스불이 등장하기 전까지 산업혁명의 동력원이 되었다. 1820년부터 수년간 계속해서 일본 근해에 바다의 ‘코스모포리탄’이라는 향유고래 떼가 출현하자 미국은 100여척의 포경선을 파견했고, 1853년 동인도함대사령관 페리 제독은 태평양 미국 포경선의 기착항구가 필요하다고 일본의 개항을 강요했다. 미국의 포경선(전체 872척 중 652척 차지)은 이 향유고래를 쫓아 150년 간 세계의 바다를 누볐다. 1946∼1980년 약 35년간 77마리의 향유고래가 포획되었고, 남획으로 고래 자원이 줄고 고래 기름 값이 급등하면서 경제위기론 까지 대두되었다. 그러나 1859년 펜실베이니아에서 처음 발견된 석유는 고래 기름을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도 고려시대엔 등화(燈火)용의 경유(鯨油)가 등장했고, 원(元, AD1273)의 ‘다루하치’가 함경도와 경상도에서 고래 기름을 구해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조 말 왕조실록에 ‘바닷가에 고기잡이를 하는 이가 없다(海邊無捕魚之人)’고 했고, 어민들은 표착(漂着)한 고래를 잡아 기름을 쓸 생각을 하지 않고 바다에 몰래 밀어 넣었다고 한다. 관의 수탈이 심했다는 이야기다.

1900년에는 일본이 고종으로부터 경상, 강원, 함경 3도의 연안 3해리 내에서 포경특허를 받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인들의 횡포가 극심했고, 해방 후 장생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포경업은 영세성을 면치 못한 채 1986년 막을 내렸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두 마리의 향유고래가 새겨져 있으며 2004년 동해안에서 70년 만에 발견된 일도 있다.

향유고래의 정상적인 대사과정인지 병리적인 현상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어류나 대왕오징어를 먹은 후 완전 소화시키지 못하고 토해내거나 장속에서 발견되는 용연향은 바다의 떠다니는 황금덩어리 또는 바다의 신 ‘넵튠’의 보물이라 부르기도 한다. 호주 해안(7억3천만원), 뉴질랜드 해안(4억6천만원) 및 영국남부 해안(7천만원) 등에서 발견된 용연향 덩어리는 사향노루의 사향(muscon), 비버의 카스트로(castor) 및 사향고양이의 시벳(civet) 등과 더불어 최고의 값비싼 동물성 향료라고 한다.

향유고래 한 마리는 매년 호흡을 통해 이산화탄소 20만 톤을 내 뿜는 반면 매년 철분이 포함된 50만 톤의 배설물로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 작용을 도와주고, 이 식물성 플랑크톤이 4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2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플린더스대학 생물학부 연구진이 발표했다. 향유고래는 바다에서는 천적이 없으나 영문도 모르고 자기 몸을 희생하여 인류에게 빛을 준채 죽어갔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향유고래에 큰 빚을 지고 있다. 2016년 병신년(丙申年) 새해 5대양을 넘나들며 물살을 가르는 향유고래의 위용이 우리의 희망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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