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기에 걸친 스페인 통치를 종식시킨 독립영웅 볼리바르의 나라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La Pas)에서 남쪽으로 200km 떨어진 포토시(Potosi)주의 해발 3,653m에 면적 12,000㎢ 크기의 소금호수(사막)가 있다. 우기인 12∼3월에는 약 20∼30cm의 물이 고여 지평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어 호수와 하늘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2곳에 선정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호수 한가운데 선인장만 가득한 섬이 있다. 잉카와시 섬(Isla Inchahuas)이다. 물고기 모양을 닮았다 하여 물고기의 섬(Isla del Pescado)또는 어부의 섬이라고도 부른다. 이 지역은 고온 건조하여 선인장이 연 1cm 밖에 자라지 못하는데도 천년을 자란 1m 또는 3m 크기의 선인장이 가득하고, 산호석도 있어 과거 바다였다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토끼얼굴에 긴 꼬리를 가진 설치류인 비스카차(viscacha)라는 동물이 유일하게 서식한다. 중부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인 이곳은 백악기에 지구의 태평양판이 남아메리카판 밑에서 충돌하고 지각이 융기되어 산맥 분지형 지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지각변동으로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한 바닷물이 분지에 갇히게 되었다가 빙하기와 2만 년 전 해빙기를 거쳐 오늘날의 소금사막이 되었다. 분지 지형의 특성상 고온 건조하며 강우량이 적어 소금 결정체만 남았다. 엄청난 분량의 소금은 안데스 산맥의 융기과정에서 바다로부터 기원한 것과 주변의 산지에서 호수로 흘러내린 염류가 합쳐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갈릴리호수는 서해로 물이 빠져나가므로 담수호로 남아 있지만 사해(Dead Sea)는 출구가 없어 소금호수가 된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 때 이 우유니 소금을 가져가기 위하여 철로를 부설하는데 막대한 돈을 투자했으나 소금 값의 폭락으로 철수하고 당시 다니던 기차를 내동댕이치고 손을 떼는 바람에 폐차된 녹슨 기차가 소금호수 가운데에 남게 되어 ‘기차무덤’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경상남도보다 약간 넓은 규모의 소금사막에는 1∼10m 두께의 소금 층이 11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두꺼운 층은 20m에 이른다고 한다. 전체 약 100억 톤의 매장량이 있고, 매년 25만 톤의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볼리비아 국민이 천년 이상을 먹을 양이라고 하나 그 질은 우수한 편이 아니다. 대신 휴대전화, 노트북의 배터리, 핵융합 원료로 사용되는 희소광물 자원인 리튬 매장량이 540만 톤으로 전 세계 자원 량의 1/3을 차지하고 있어 엄청난 자연의 선물이다. 소금의 제조는 볼리비아 정부의 허가를 득한 광업공사가 전매로 제조하여 판매하나 원주민인 치파야족(Chipaya)에게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서로 붙은 각각의 호수마다 흰색, 적색, 녹색 등 조류가 자생하고 있는데 홍학이 날라 와서 호수의 조류를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식물이 전무한 소금사막이다.

이와 같은 소금사막은 신생대 조산운동(造山運動)으로 인한 것으로 규모의 차이는 있으나 터키, 인도, 에티오피아, 페루에도 소금사막이 있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양(梁)나라가 소금을 의약품으로 취급하여 약물 중독의 해독제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바닷물을 끓여 자염을 만든 역사도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일본은 약 4천 년부터 소금을 제조했고, 헤이안(平安) 시대에는 소금을 급여로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소금사막이나 암염이 없는 우리에게는 소금의 원천은 갯벌에 고인 고염도의 해수를 가마솥에 끓여서 만든 자염(煮鹽)이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전통방식 이었으나 그 방식으로는 소량의 소금밖에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1900년 초 일본인들이 바닷물을 가둬 햇볕에 증발시키는 대만식 천일염 생산기법을 국내에 도입하면서 천일염이 양산되기 시작했으므로 그 역사는 길지 않다. 당시 자염의 최대 생산지로는 곰소, 태안, 고창, 순천, 울진이었다. 일본은 전쟁물자는 말할 것도 없고 소금까지도 막대한 수송비용을 들여 우리의 소금을 반출해 갔다. 곰소염전은 일제의 소금 수탈 전진기지였다. 일본인들의 소금에 대한 애착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했다. 4면이 바다로 섬나라인 일본에 염전이 없을 턱이 없음에도 우리의 소금을 수탈해 간 것은 그만큼 소금의 질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한편 우리 소금의 한 해 생산량이 불과 50만 톤에 불과한데 비하여 280만 톤이나 수입이 되고 있다. 칼슘, 칼륨, 마그네슘 함량이 우리의 것보다 떨어지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이 짠맛, 쓴맛, 단맛의 절묘한 배합비중을 앞세운 제품으로 몇 십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다니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은가. 반면 나트륨 함량만 높아 엄청나게 짠 중국산 저질 소금을 염전에서 세탁하거나 포장갈이를 시도하는 예를 보면서 우리 소금 산업의 앞날이 우려된다. 우리 전통 식품인 된장 고추장을 비롯하여 각종 염신품과 기호식품인 간 고등어, 굴비는 말할 것도 없고, 김장용으로 값이 조금 높아도 우리의 질 좋은 소금을 쓰는 것이 가족들의 입맛을 지키고 건강을 담보하는 길이다. 전통적으로 곰소, 소래포구, 광천, 강경의 젓갈이 명품인 것은 우리 소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소금 한 줌을 얻기 위하여 청정 바닷물 백 바가지와 염부(鹽夫) 천 방울의 땀이 필요하다고 한다. 게랑드 소금에 맞서 염전에서만 자란다는 함초 성분이 함유된 ‘곰소함초소금’, 염전주변 산림의 90%가 소나무인 ‘태안송화소금’,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의 갯벌에서 생산되는 ‘신안의 섬들채’ 등 고부가가치인 명품소금이 제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만이 우리 소금의 우수성을 잘 모르고 있다. 하버드대 교수가 한국의 가능성을 제시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작)”이란 책이 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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