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2일 서거한 김영삼(YS)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었고, 국회의 수장까지 역임한 P의장은 당시 연말 대선을 앞둔 정치상황을 방휼지쟁(蚌鷸之爭)의 우화에 비유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끝이 없는 정치투쟁은 마치 조개와 도요새가 서로의 주둥이를 물고 먼저 놓으라고 고집을 부리다가 어부에게 잡히는 형국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우화는 고대 중국 전한(前漢) 때 유황이 지은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등장한다. 군웅이 할거했던 전국시대는 패권다툼의 놀음에 빠져 파멸의 길로 접어드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군왕들을 경계한 내용이다. 조(趙)나라 왕이, 제(齊)나라와의 전쟁으로 국고가 바닥이 나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연(燕)나라를 치려하자 해학과 변론에 능한 세객(說客) 소대(蘇代)라는 사람이 연나라 소왕(昭王)의 부탁을 받고 조 혜문왕(惠文王)을 찾아가 말하기를 이번에 제가 여기에 오는 도중 역수(易水,연-조나라간의 국경을 이루는 강으로 베이징 근처에 있음)를 건너게 되었는데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고 했다. 마침 조개(蚌,말조개과의 민물조개) 한마리가 강변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햇볕을 쪼이는 일광욕을 하고 있었는데 도요새(鷸, 물총새)가 조갯살을 쪼아 먹으려 부리를 들이대자 조개는 깜짝 놀라 입을 오므려 버렸습니다. 이에 도요새는 주둥이를 물리고 말았습니다, 도요새는 조개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늘 내일 비가오지 않으면 조개가 말라 죽을 거라 생각했고, 조개는 오늘 내일 내가 입을 벌리지 않으면 도요새가 굶거나 호흡곤란으로 죽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물러서지 않고 맞서고 있을 때 지나가던 어부가 조개와 새를 다 잡아버렸습니다. 소대는 이어서 조나라와 연나라가 싸우게 되어 백성의 삶이 피폐해 진다면 신(臣)은 강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조나라 왕은 전쟁을 포기하고 백성을 돌보게 되었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어부지리(漁父之利, 漁翁之利, 漁人得利)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인용하고 있다. 전국책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 편찬에 주요 사료로 이용했다고 한다. 기원전 전국이 통일되지 못하고 살벌했던 전쟁의 한 가운데에서도 해학과 풍자의 여유가 넘쳤다는 사실이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논쟁만하는 정치권이나, 국가경제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 분야의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중의 힘에 의존하는 오늘의 현실이 새삼 부끄럽다.

1928년 8월 7일자 D일보는 ‘면장 쟁탈전’이라는 제하에 경북 영천군 대창면의 방휼지쟁 사건을 다루고 있다. 동 면내에는 조(曺)씨 성과 성(成)씨 성의 두 성씨가 대부분으로 각각 상당한 문벌(門閥)을 이루어 오래 전부터 살아오는 터로 금반 면장이 결원이 생겨 조씨와 성씨 편에서 각각 한명의 후보자가 나와 과열 양상을 보이자 군청에서 제3자인 김씨를 임명하였다는 기사가 있고, 1960년 8월 12일자 동일 신문의 ‘횡설수설’란에는 제2공화국 대통령선거에서 당시의 M당 신파는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안분배석(按分配席) 방식을 주장하고, M당 구파는 양직독식(兩職獨食)을 강하게 주장하여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자 양파는 예로부터 방휼지쟁을 경계해야 한다고 쓴 것으로 보아 이런 상황들은 1930년대부터 자주 있었던 것 같다.

현재 우리는 경제 활성화를 부르짖고 있으나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한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위기 적극대처를 위한 지식인 모임에서는 한국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봉착해 있으니 경제 활성화 법안과 진행 중인 무역자유협정(FTA)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국회에 호소한 바 있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서는 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수출이 10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고, 13억 거대 시장인 반면 위안화의 기축통화 편입에 성공한 맹렬한 추격자인 중국과의 FTA가 지난 30일에야 우여곡절 끝에 비준되었으나 골든타임은 놓쳤다. 그동안 정부도 농어촌에 진정 도움이 되는 방안들을 더 세심하게 살펴보는 노력이 필요했는데도 비준이 늦어지면 하루 40억 원 손해라거나, 직불제 확대, 보전금 인상 및 기금조성 등 흘러간 노래나 틀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무역이익공유제가 전부인 것처럼 매달렸을 뿐이고, 국책연구기관들을 앞세운 세미나에서도 전략과 대책의 수치만을 제시하고 이성적으로만 대처해 왔을 뿐, 국민소득 3만$의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현재의 아픔을 참자고 감성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위정자들의 솔선수범과 몸가짐이 아쉬웠다.

견토지쟁(犬珩之爭)이라 하여 한로(韓盧)라 하는 개(犬)가 동곽준(東郭逡)이란 토끼(兎)를 쫓아서 산을 오르내리기를 다섯 번 그리고 산을 돌기를 세 번 하다가 마침내는 둘이 다 기진맥진하여 죽었으므로 지나가던 제3자인 농부가 힘 안들이고 둘 다 얻었다는 전부횡재(田父橫材)의 형국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발만 더 지체되었으면 개와 토끼 모두는 제3국의 소유가 되었을 위기였다. 필자는 FTA와 관련하여 부닥친 상황이 어항이냐 강이냐에 따라 몸집이 달라지고 강하게 적응한다는 ‘코이(Koi)의 법칙’과 ‘메기의 법칙’을 상기한 바 있다.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H그룹의 왕회장 이야기가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회자되고 있음을 무었을 의미하는가. 거북선이 인쇄된 오천 원 권 한 장으로 일궈낸 울산 갯벌의 거대한 조선공화국을 보면서 이기심만을 내세우고 도전정신과 인내심이 결여된 우리의 나약함을 일깨워 주고 있지 않은가. 세계화 시대에 살면서 FTA는 어느 가수가 부른 ‘동행’이 아니라고 부정할 사람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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