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9월 3일자 D일보 창간 50주년 기념작품으로 당선된 최남백씨의 장편 “식민지(植民地)”란 연재소설에 어물전(魚物廛)이란 말과 함께 ‘니햐꾸도까(이백십일)와 니햐꾸하쓰까(이백이십일)’란 일본식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은 일본에서 풍신(風神)이라 하여 입춘에서 헤아려 이백 열흘 되는 날 또는 이백 스무 날로 양력 9월 1일 또는 2일 전후로 남양방면에서 시작한 저기압인 태풍이 불어와 해일과 심한 풍랑을 일으켜 농업이나 수산업에 큰 피해를 유발한데서 유래하였다. 이 때 일본 농어촌에서는 풍진제(風鎭祭)를 지내 액땜을 하였다.

700여 년 전 동아시아를 흔든 사건으로 고려를 여러 차례 침략한 몽고(원)의 강압에 따라 고려(총사령관 김방경)는 몽고와 연합군(여몽연합군)을 편성하고, 4개월이라는 단기간에 건조한 함선 900척(초공-조타수, 인해-항해사, 수수-선원)과 고려군이 주력인 4만 명(몽고 육군 포함)으로 일본 쓰시마와 이키섬을 거쳐 후쿠오카의 ‘하카다만(灣)’을 공격하였다. 특히 고려 충렬왕 7년인 1281년의 제2차 공격 시 마산의 합포항을 출발하여 7월에 일본에 도착하고 상륙작전을 펼치기로 한 날이 니햐꾸도까인 이백십일 쯤으로 일본의 운명은 풍전등화였다. 그러나 당일 열대저기압인 태풍이 불어와 10m길이의 대형 목재 닻과 300kg이 넘는 돌 닻을 사용하였음에도 함정의 대부분이 파괴됨은 물론 고려군만도 7천명이나 익사하였고, 그리고 상륙한 대부분의 여몽연합군 병력도 죽임을 당했다. 연합군이 패전하여 마산으로 돌아온 병사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한다.

1959년 9월 17일 추석 하루 전에 불어온 ‘사라호’ 태풍은 사망.실종이 1천여 명에 이르고 대부분이 어선인 선박의 피해도 620여척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당시 진해 해군공창 지붕의 함석들이 벗겨져 하늘을 날고 무서운 살인 병기로 둔갑하기도 했다. 또한 해군통제부내 대형 나무들이 거의 전부 쓰러졌다. 월드컵 해인 2002년 8월31일 태풍 ‘루사’가 불어와 엄청난 피해를 냈고 강릉지역에는 하루 강우량 최대인 870mm를 기록하였다. 2003년 9월 12일의 ‘매미’는 1904년 우리가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강한 태풍이었으며, 마산의 지하 노래방에 물이 들어와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8월 29일에 불어온 태풍 ‘볼라벤’ 역시 엄청난 피해를 기록했다. 이와 같이 니햐꾸도까(이백십일)나 하쓰까(20일) 전후로 불어온 기상 재난은 실로 그 위력이 대단하였다. 또한 공통점이 항구의 안전지대에 대피한 어선들까지도 무차별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지구상 열대성 저기압은 연평균 80개에 이른다고 한다. 필립핀 근해에서 발생하는 태풍(Typhoon), 북서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 아라비아해에서 발생하는 싸이클론(Cyclone)과 호주와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윌리윌리(Willy-Willy)도 있었으나 이것은 현재 기상학에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열대성 저기압은 지구의 열평형 즉 적도와 극지방의 열량교환을 위한 필수적인 작용으로 태풍이 없다면 지구의 환경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꼭 필요한 현상이라고 지구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태풍은 바다에 엄청난 파도를 일으켜 수많은 선박과 인명은 물론 해안가의 건물과 각종 인프라 그리고 양식장 시설을 파괴한다. 반면 해수를 수직적으로 잘 섞어주는 역할도 하여 적조발생을 억제하고 외해나 심해의 영양염을 표층까지 이동시키거나 끌어올리는 여러 가지 순기능도 있어 유용한 해양생물을 번식하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특히 남해안의 어류, 굴, 우렁쉥이 양식장의 해저에 쌓여있는 오염물질을 외해로 이동시키는 역할도 하여 양식어민들은 큰 파괴력이 없는 태풍을 기다리기도 한다. 태풍이 지나간 후 어선들의 어획량이 증가했다는 보고도 있다. 따라서 태풍은 인간에게 피해도 주지만 우리가 사는 지구환경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태풍발생지역에 핵 위력의 폭탄을 투하하거나 햇볕을 차단하여 열을 얻지 못하게 함으로써 태풍이 소멸되게 하는 연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제주도의 한 지역신문에 1960년도 가파도에 학술조사단이 들어갔다가 이백십일의 바람이 부는 가운데 뭍으로 급히 나가려고 서두르는 조사단에게 촌로들이 ‘기다림의 경륜’을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려 있어 동양 고전인 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바람이 비껴 불고 빗발이 급한 곳에서는/ 다리를 꿋꿋이 세워야 하고/ 꽃이 무르익고 버들 빛 아름다운 곳에서는/ 눈을 높은데 두어야 하며/ 길이 위태롭고 험한 곳에서는/ 머리를 빨리 돌려야 한다.

8월의 더위가 지면 이백십일의 슈퍼 태풍 계절인 9월이 온다. 일본이 한국보다 통과하는 태풍의 수는 많으나 피해는 우리가 많다고 하니 시사하는 바 크다. 입산선탐로 출해선탐풍(入山先探路 出海先探風 산에서는 먼저 길을 알아두고 바다에서는 먼저 바람을 살펴야 한다). 이것이 이백십일 기상공포를 극복하고 예방하는 지혜이다.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