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송어양식이 시작된지 올해로 50년을 맞았다. 송어양식 50년을 함께 한 함준식(76) 원복송어양식장 대표는 한국송어양식의 산역사이자 송어양식의 개척자로 송어양식업계의 거목이다.
그는 강원도립양어장에서 시작해 1969년에는 원복수산을 설립하고 끈기와 집념,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도전정신으로 평생을 송어양식의 외길을 걸어온 진정한 양식수산인이다. 평생을 송어 양식에 투신한 함준식 사장은. 2010년 모교 부산수산대(현 부경대)에서 박사학위도 땄다. 그가 평창군 미탄면 창리에서 운영 중인 수면적 1만여㎡ 규모의 양식장에서는 연간 300∼400t의 송어가 생산되고 있다.
이주섭 수산인신문 편집위원이 평창문화원장실과 원복수산 송어양어장에서 함준식 원복수산 사장으로부터 송어 최초 도입과 발전사, 송어생태와 특성, 송어발상지에 기념비 건립, 송어양식의 애로사항, 송어 바닷물 길들이기(순치), 송어양식협회 역사 등의 얘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나라 송어양식은 시작은.
▶ 1965년 1월 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헨리크라인슈미트 씨가 보내온 송어 종란(Kamloop Rainbow Trout eggs-켐루프종) 10,000개를 수산청으로부터 기증받아 1965년 강원도 화천댐(파라호) 하단에서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송어양식의 효시다.
(1965년 1월 5일자 동아일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송어양식장이 1964년 12월 25일 화천댐 근처에 40만원을 들여 준공, 3일 미국에서 들려온 송어알 1만립을 넣어 양식에 들어갔다. 강원도당국은 1968년까지 연차적으로 모두 1천2백41만원의 예산으로 4천1백58평방미터의 현대식 도립송어양어장을 설치, 송어양식에 나설 방침이다. 앞으로 15일 후면 알을 까고 나올 이 송어는 현재 시험양식과정인데 가장 큰 놈은 길이가 1미터20센티, 무게가 23킬로그램이나 되며 연간 순수입액을 1평방킬로미터에 3천6백원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처음 시도했던 송어양식 결과는. 
▶ 부산수산대학 증식과를 졸업하고(당시 25세) 화천도립양어장 현지 책임자로 임명됐는데 양어장에서 1㎞ 떨어진 민가에 하숙을 정하고 송어양식에 매달렸다. 난방시설도 없는 양어장에서 그해 겨울은 영하 28℃의 추위 속에서 견뎌야 했다. 대학에서는 온수성 어종을 전공했으나 흔하지 않은 송어 같은 냉수성 어류는 이론무장도 경험도 없이 양식을 시작했으니 맨바닥에 헤딩하듯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내 참고문헌도 구할 수가 없어 벙어리 냉가슴 앓던 차에 겨우 일본과의 서신왕래에 의존하던 어려운 시기였다. 반년 넘게 양식장에 상주하며 송어를 돌봤지만 송어들은 자라지 않았다. 송어에 대한 연구는 물론 기본 정보조차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양식 시작 7개월 후 1만개의 알 중 부화해 제대로 남은 송어는 15마리, 0.15%에 불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천댐의 수온(2∼3도)이 송어가 잘 자라는 수온(10∼15도)에 비해 너무 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장마철은 1개월간 탁수의 침전으로 인한 수질악화로 등 환경여건의 부적합으로 결국 7개월 만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고생을 견디다 못한 동료마저 사표를 내고 화천을 떠나 버렸다.

-송어 양식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송어양식 초창기에 기술도 미숙하여 일본송어 전문가와 서신왕래 등으로 경험을 쌓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합사료가 없던 시절이어서 어린새끼에는 소간, 돼지의 간을 구하여 먹이고 성장하면서 잠사공장에서 생번데기를 구해서 건조시켜 먹였다. 하지만 보관시설이 없던 시절이어서 1주일이면 부패현상이 일어나 어려운 점이 많았고 교통마저 열악해 초만원 버스에서 구입한 사료 뭉치를 잃어버린 경우가 여러 번 있어 송어사육을 제대로 못한 실정이었다. 특히 어류질병으로 많은 폐사를 가져왔고 어병치료에 심각한 시절을 겪기도 했다.

-송어양식에 성공한 배경과 시점은.
▶ 1965년 10월 용천수가 풍부하고 적당수온을 유지할 수 있는 평창읍 상리로 시설을 이전해서 간이 송어 양식장을 설치하고 시험양식을 한 결과 1967년. 드디어 강원도에서 제대로 성장한 송어와의 첫 대면이 이뤄졌다. 송어는 국내 주둔하는 미군 부대와 고급 호텔 등에 보급되면서 강원도 살림살이를 보태는 효자가 됐다. 양식기반을 다지는 평창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수년간 도입에 의존했던 송어종란을 드디어 자체적으로 채란과 부화를 성공시켰고 양식기술은 일반화될 만큼 국내양식과 생산보급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1983년에는 국내에서 사료가 개발돼 송어생산량이 증가하고 양식어체가 급격히 늘었다. 수년 사이 전국 생산량은 3000여톤에 이르게 됐다. 

-바닷물 길들이기(순치) 결과는.   
▶내륙지에는 송어가 판매되고 있지만 대도시에는 적정 수온유지를 위한 특수시설을 필요로 하고 민물고기라는 선입감으로 소비가 둔화되고 있어 1986년 국내 최초로 바닷물 길들이기(순치)를 시도했다. 1987년 동해안 옥계해안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에서 전남 고흥에서 해상가두리로 양식을 시도해 성공은 거두었지만 여름철 고수온기에 생산이 어려워 연중 생산이 불가능해 소기의 생산을 위한 실적은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송어양식장 수와 생산량은.
▶ 송어양식 생산으로 양어장은 전국적으로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87년 133곳, 1988년 182곳, 1989년 271곳, 송어양식 25주년이었던 1990년에는 285곳으로 늘었다. 그러나 1990년도를 정점으로 송어양식 40주년이었던 2005년에는 80개소가 줄면서 지금은 안정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무지개송어의 연간 생산량은 3500t으로 강원도 평창과 정선을 중심으로 60~70%을 차지하고 있다.

-송어 생태와 특성은.
▶ 송어는 냉수성어종으로 차고 맑은 물에 살고 있으며 옆구리에 붉은 띠와 등쪽에 초록 배쪽에 황색에 가까운 색을 갖고 있으므로 마치 무지개 색을 띄고 있다 하여 무지개송어(Rainbow Trout)라고 부른다. 무지개송어는 계절에 관계없이 횟감과 소금구이로 판매되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불청객으로 찾아오는 비브리오 패혈증은 바다 생선회에 해당되므로 민물에는 비브리오 패혈증균이 살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 송어횟감과는 무관한 것으로 발표됐다.

-송어양식협회의 역사는.
▶1990년 강원 송어양식협회를 창립하고 송어양식 25주년 기념집을 발간했다. 1992년 수산청에 단체등록을 함으로써 송어양식협회가 발족됐다, 1994년 협회보를 창간했고 1995년 평창에 30주년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1996년 30년사를 발간했다. 2005년 40년사를 발간하고 2015년 1월 3일 평창에서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데 이어 4월 15일에는 서울 코엑스에서 5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오는 9월 1일에는 화천에서 기념비 건립과 기념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송어 발상지에 기념비 건립은.
▶ 1965년 1월 3일 송어 종란을 최초 도입해 화천댐호 하단에 부화장을 시설한 발상지에 당시를 기념하기 위해 박경원 전 강원도지사 명의로 기념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제가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오는 8월 중에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송어양식 50주년 기념비(The 50th Annivarsarya Monumet of trout culture in korea) 전면에는 송어 도입유래와 내력을 기술하고 뒷면에는 여기에 계신 이주섭 시인의 ‘무지개송어’라는 시(詩)를 새겨넣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조형물 전문가와 현지답사를 하고 있다.

-송어업계의 앞으로의 과제는.
▶홍보를 통해 무지개송어 판매를 확산시키고 바닷물 순치로 바다송어 생산을 위한 연구개발과 함께 다양한 송어 제품과 요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은 강원도의 송어양식산업을 전 세계에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면서 친환경 양식산업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관광산업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기대되는 만큼 송어양식업계가 단합된 힘을 발휘해서 이 기회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반세기 동안 송어양식 분야에 도전하면서 시련이 거듭될수록 새로운 양식방법을 개발해 고난을 극복한 결과, 한 생명체인 송어양식의 일부분을 됐다. 지난 고난의 역사를 감수하면서 모아 둔 자료를 정리해서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한국 송어양식 25주년 기념집’과 ‘한국 송어 40주년 기념집’을 출간했으며 반세기의 역사자료도 조만간 출간할 계획이다.

<만난사람 이주섭 편집위원>

 

‘무지개송어(안)’

일강 이 주 섭

켜켜히 쌓인 세월이 반세기에 이르니
차디찬 맑은물 강원땅에서
보름이 되어 눈이 생기고 한달이면
새끼가 되던 시절에
민물이 밀어올린 아침햇살과
힘차게 더듬어 물장구치니
일곱빛깔 품고사는 물고기가 되어서
파르르 꼬리치며 달려오던 송어는
어느한끝에서 별이되어
화천댐 하구에 기념비 되니
그것은 긴세월 지켜온 산증인이
임자되어 구슬꿰어 보배로 만들고
이땅에 발붙인 초석이었다.

저작권자 © 수산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