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70년대 이른 새벽 골목길의 정적을 깨우던 투박하면서도 한편으론 정겨운 경상도 아지매의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그리고 ‘메이드 인 홈’과 ‘원산지’ 시비 없이 “딸랑 딸랑” 종소리 같기도 하고 방울소리 같기도 했던 하나같이 마음씨 좋아 보이던 두부 아저씨의 모습과 소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지 오래된 추억이 되고 말았다.

부산 동래 금정산 입구의 골목길에 자리 잡은 작은 할아버지 집에서 상당 기간을 보낸 필자는 골목 어귀에서 울려오는 재첩국 사이소와 두부아저씨의 방울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면 할머니는 부엌을 지키던 아이에게 빈 양은냄비를 들려 재첩국과 방금 만들어 낸 김이 무럭무럭 나는 두부를 사는 것이 거의 일과가 되었다. 전날 늦도록 친구들과 고달프던 인생사를 논하면서 늦게까지 한잔하고 통금시간에 쫓겨 귀가한 할아버지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무기질과 비타민이 담뿍 들어 있는 뽀얀 형광색의 재첩국이 당시로서는 숙취 제거에 최고였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의 낙동강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최후의 보루로서 핏물이 넘친 아픈 역사를 흘러 보내고, 부산시민과 전국 내륙지까지 재첩을 공급하는 풍요로운 강이었다. 낙동강 하구의 기수역의 풍부한 사질(沙質)은 재첩이 서식하기에 최적의 서식지이고, 물반 재첩반이라는 을숙도는 사람과 철새 특히 도요새와 먹이를 공유하면서도 전국 수요량을 공급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낙동강 하구언(堰)이 1987년 축조되어 조류의 소통이 막히고 사질이 벌로 바뀌고, 여기에 수요가 증가하자 무지한 사람들은 형망선을 동원하여 기업을 추구하면서 재첩 서식지와 산란지를 무자비하게 뒤집어 버렸다. 소쿠리와 양파망 그리고 호미하나가 재첩채취의 최적의 어구였고, 조금 발달시켜 긴 막대 끝에 부챗살 모양의 긁개가 달린 ‘거랭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조업하였으나, 인간의 욕심과 육지오염원 유입을 무감각하게 생각한 우리 모두에 의한 인재가 풍요로운 낙동강을 망치고 그 명성을 하동의 섬진강에 넘겨 준지 오래되었다.

최근 일련의 인공적인 종패살포와 하구언 인근 어촌계가 관리하는 명지 등 수역에 수질개선, 하구언 수문개방 빈도 및 민물유입의 증가 등 환경개선이 이루어져 낙동강 재첩의 귀환(?)이라고 기뻐하고 있으나, 지난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실시된 불도저와 포클레인 등 인공 삽질로 다시 자원회복징후가 사라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물론 아직도 부산 삼락동 재첩거리에는 30년의 원조 할매재첩국을 비롯하여 몇 곳의 재첩전문점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추억의 장소일 뿐이다.

재첩은 크기가 2∼4cm로 식용 패류 중 가장 작은데 속하나 그 영양가는 재첩보다 몇 배나 큰 바지락을 크게 능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예로부터 남녘의 어촌에서는 조개류 중에서 으뜸 보약이라고 여겼고, 특히 간이 나쁜 사람에게는 재첩이 최고라고 알려졌다. 동의보감에도 재첩은 다른 음식과 함께 먹어도 충돌하거나 영양가가 손상되지 않으며, 눈을 맑게 하고 피로를 풀어준다고 나와 있다. 특히 간 기능을 개선하고 향상시키며 황달을 치료한다고 한다. 위장을 편하게 하고 당을 조절하며 몸의 열을 내리고 기도 북돋운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필수아미노산인 메치오닌이 간장의 활동을 촉진시키고 타우린이 담즙의 분비를 활발히 하여 해독작용을 돕고 악성 빈혈에 좋다고 한다.

재첩은 초록빛 보릿대가 올라올 즈음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그 진가를 더한다. 해감을 잘한 재첩 알갱이를 겨울을 이겨낸 봄동과 향이 진한 자연산 냉이 달래를 넣고 약간의 배를 썰어 넣은 후 초고추장을 적당이 넣어 쓰으윽 비벼 먹으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고 하는 식도락가가 있는가 하면 아침 출근길이 바쁜 샐러리맨들에게 따끈한 밥 한 공기 뚝딱 비워주는 영양식이었고, 주당들이 불편한 속을 달래주기 위해 찾는 저렴한 속풀이 해장국이었다.

재첩은 갱조개, 가막조개, 재치, 애기재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동에서 재첩국 종가로 약 40년 2대에 걸쳐 운영한다는 D식당에서는 ‘재첩국에는 정구지(부추)와 천일염’ 이외에는 다른 잡 양념을 해서는 본래의 맛과 푸르스름한 안개빛이 아니라고 한다. 또 다른 하동의 H식당도 정구지와 소금으로만 양념을 하고, 만약 중국산 재첩이 한 톨이라도 들어가면 500배 배상을 하겠다고 붙여 놓고 장사를 한다고 한다. 음식에도 궁합이 있듯이 재첩의 유일한 약점은 비타민 A가 타 패류보다 부족한데 부추에는 비타민 A의 모체인 베타카로틴이 매우 많은데다 열에 견디는 성질이 강해 국을 끓여도 손실이 적기 때문이다.

한편 섬진강도 ‘80년대 중반 광양제철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재첩 생산량도 떨어지고 환경도 옛날 같지 않다하니 걱정이라고 한다. 물론 도심이나 내륙지에 사는 소시민들은 재첩국 공장에서 대량으로 가공한 재첩국을 마트에서 사먹고 있으나 부산이나 하동의 자부심과 오기를 빼고 먹는 셈이다. 우리는 신토불이 ‘어식백세(魚食百世)’ 시대에 살고 있다. 정부가 원산지표시를 강화하고, 법에 근거한 강제이력추적제를 일관되게 추진한다면 재첩은 우리 토산물이며 명물로서 그 명성을 회복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며 낙동강이나 섬진강의 재첩요리를 손쉽게 맛볼 날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김해가 고향인 박언자 시인은 ‘낙동강’이란 시에서...(중략) 시리도록 그리운 모습이다/ 어디로 다 숨어버렸을까/ 마음 설레어 눈 맞추려 애를 써 보지만/ 물안개만 자욱이 내리고 있다...라고. 시인이 어린 시절 낙동강에서 자맥질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언제나 호주머니와 고무신에는 재첩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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