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될 만큼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발전되어 왔다고 한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래 음식물을 오래도록 보관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나, 사자나 호랑이 등의 하등동물은 한 끼 배를 채우기 위하여 사냥을 해왔고, 사냥 기술이 그들의 삶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데 필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처음으로 말리는 방법 즉 건조라는 수단을 통하여 수분을 증발시키면 보관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알아냈다. 이 후 인류는 제염기술의 발달로 소금을 얻게 되자 소금으로 절이는 방법도 있음을 알아냈고, 아울러 발효시키는 식품저장방법도 나왔다. 우리가 365일 먹는 김치도 이런 식품저장 방법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이용해 식품을 절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김치의 효시다.

한반도는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쌀을 주식으로 하는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비타민과 각종 미네랄을 각종 채소를 통하여 섭취했다. 그러나 4계절이 뚜렷한 기후 특징으로 현재와는 달리 당시에는 겨울에 채소를 먹을 수 없게 되자, 소금으로 배추(在來種)를 절이게 되었고,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오늘날의 김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김치 형태는 1600년대 고추(南邦産으로 임진난 이후에 들어왔으므로, 그 전에는 소금, 후추, 천초川椒 등 사용)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나타났다. 초기의 김치 형태는 삼국지 위지동전(魏志東傳)에 고구려는 발효식품을 잘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후주서(後周書)에도 절임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이미 초기 형태의 김치류 제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6세기 중국 북위 때의 책인 제민요술(AD39-35 濟民料術)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김치 담그는 법을 소개하고 있으며, 주로 ‘엄초법(酸味料)’, ‘발효지법’, 및 ‘엄장비법(장아찌)’이 소개되어 있다.

일본 문헌인 정창원고문서(正倉院古文書)는 수수보리저(須須保里菹) 즉 김치무리를 일본에 전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삼국사기(1145년 金富軾) 신문왕(神文王)편에는 ‘혜’(醯 김치류)라는 용어가 등장하며, 김장독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독이 경주 ‘법주사’ 경내에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보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등과, 조선시대의 태종왕조실록(王朝實錄),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등에도 배추(현재의 통배추는 1700년대 중엽 중국에서 들어옴) 및 순무 절이는 기록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만 중국과 일본에도 채소 절임의 김치와 유사한 식품이 있으나, 각종 젓갈에 의한 단백하고, 발효의 훈향(薰香)을 내는 발효 야채식품은 한국의 김치뿐이라는데 이의가 없다고 한다. 현재 일본에서 한국의 김치를 흉내 내 만든 ‘기므치’가 있으나 김치의 아류(亞流)라고나 할까.

김치의 어원을 보면 약 3천 년 전의 중국문헌 시경(詩經)에 채소절임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저’(菹 조선시대 성종의 생모인 인수대비가 엮은 내훈에 ‘菹’가 ‘딤채’ 라고 설명함)라는 자가 김치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며, 상고시대(上古時代) 때 김치류를 총칭하는 말로 소금에 절인 야채를 뜻하는 침채(沈菜)라는 말에서 오늘날의 김치의 어원(침채-팀채-딤채-짐채-김채-김치)이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 겨울 3-4개월 동안 먹을 채소의 저장 방법으로 늦가을에서 겨울 초입에 행하는 김치담그기가 김치의 어원에 근거하여 침장(沈藏)이 김장(철)이 되었다고 한다.

김장김치는 지역별로 특성이 있는데 기후조건(5C 전후)이 제일로 고려되며, 지역의 전통적인 특산 생선(명태, 갈치. 가자미 등)과 젓갈류 그리고 각종 재료와 양념을 사용하면서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그 종류도 백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한국김치의 맛은 지역의 젓갈종류는 물론 같은 종류의 젓갈이라도 발효과정에 따라 김치 맛을 크게 좌우한다. 주부들은 일반적으로 강경, 강화, 광천, 소래포구, 곰소의 젓갈과 생새우, 그리고 신안 천일염으로 제조한 신안의 젓갈을 특산품으로 꼽고 있고, 군산의 황석어젓, 통영 및 추자도의 멸치젓 등과 백령도의 까나리 등도 선호하고 있어, 김장철에는 이곳의 어시장은 전국에서 몰려든 상인과 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 및 동남아산 젓갈 특히 새우젓을 국산으로 ‘새우젓 세탁’을 하여 유통시키는 양심 불량 업자가 있어, 김장철을 맞은 주부들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어, 검사당국의 철저한 단속이 요구되고 있고, 이와 같은 행위는 대부분 영세한 국내 생산자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반면 김치의 유래와는 달리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젓갈이 언제부터 어떤 방법으로 제조되었고, 김치에는 언제부터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젓갈이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상용(상용과 의례)하던 음식이다.’라고 고려도경(高麗圖經 1123년 宋의 國信使 徐兢의 松都 체류 細作 보고서)에 기록되어 있어, 보편적인 우리음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제민요술에 한무제(漢武帝)가 동이족(東夷族)을 쫓아 산동반도에 이르니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나서 찾아본 즉 어부들이 항아리 속에 생선내장을 넣고 흙으로 덮어두었다가 향기가 나면 조미료(액젓)로 먹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동반도와 한반도와의 지정학적 근접성으로 볼 때 젓갈과 제조법이 고려시대 이전에 일부지역에는 전해져 식용하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젓새우(젓새비, 잔새비, 백하)는 서, 남해안에 분포한다. 오젓, 육젓, 추젓 등 계절에 따라 발효시킨 새우젓은 한국인의 입맛을 윤택하게 한다. ‘새우젓 세탁’이라는 현실이 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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