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8년(1595), 임란으로 나라가 혼란하던 시절, 진중에서 읊은 ‘한산 섬 달 밝은 밤에...’로 시작되는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에 남긴 우국시(憂國詩)는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各)는 남의 애를 끊나니’로 맺고 있다. 여기서 ‘애’는 창자(腸子, intestine)의 옛말 또는 간(肝) 따위를 이른다. 나라를 생각하며 근심에 잠겨있는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가 나의 창자(깊은 마음)를 끊는다는 비장함이 배어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애’는 아이의 준말에서부터 초조한 마음속, 좋아하여 탐하는 마음, 명태의 간 따위나 비유적으로 마음 그리고 성(姓)씨에 이르기 까지 수십 가지에 이른다. 우리는 평소 ‘애간장을 말리다’(윤홍길 원장), ‘애간장을 다 녹인다(황석영의 장길산),’ 또는 ‘애간장을 태운다,’는 말을 자주 쓴다. 여기서 ‘애’ 역시 창자 또는 간장(-肝腸)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로 근심스럽거나 안타까워서 몹시 애를 태운다는 뜻으로 쓰곤 한다.

한편 수산물을 가지고 찌개나 찜을 만들 때 ‘애간장’을 넣어 요리하면 맛이 일품이라는 말도 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어린아이들이 먹는 이유식 등에 넣는 고품질의 천일염과 미네랄이 풍부한 함초 그리고 표고버섯과 다시마를 넣고 만든 ‘애(아이)간장’으로 현재 제조한 사람의 이름을 넣어 특허출원하여 판매되고 있고, 또 하나는 특별히 제조한 간장으로 수산물의 애에서 재료를 추출(肝油는 제외)한 것이 아니라 유기농으로 수확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든 후 특정시기(겨울)에 띄워 음력정월이 되면 항아리에 넣어 숙성기간을 지낸 후 걸러 낸 간장(-醬)에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멸치, 버섯류, 양파, 마늘, 생강, 사과 등 10여 가지의 재료를 넣고 다시 끓여서 만든 조미료 성격에 가까운 ‘다마리 간장’ 등을 일컫는다.

바다를 접하지 않은 내륙지 사람들은 ‘대구 애 된장국’을 먹어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대구 애 는 가끔 겨울에 슈퍼 마트에서 판매되기도 하나 워낙 귀하여 애만을 사기는 어렵고, 대구를 통째로 사서 내장 중에서 애를 적출하여 사용한다. 보통 대구 애를 넣기 전에 겨울 배추(봄동)와 된장을 충분히 준비하고, 청양고추, 마늘, 고춧가루를 넣어 손으로 주물럭거린 후 끓기 시작하면 대구 애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은 후에 다시 끓어오르면 봄동과 마늘 등 양념을 넣어서 팔팔 끓이면 대구 애 된장국이 완성되나 한 가지 문제는 애가 풀어져서 시각적으로는 별로지만 맛과 영양은 최고이다. 명태 애는 시력보호 영양제가 없던 시절에는 명태 애가 시력을 좋게 하는 시쳇말로 ‘힐링식품’이었다.

명태는 수 년 전 까지만 해도 동해안의 강원도와 경상북도 수역에서 겨울철에 많이 잡혔다. 특히 강원도에는 내륙지에 탄광이 많아 광부들은 갱 속의 어두운 곳에서 장기간 일을 하다 보니까 시력이 매우 약해지거나 심한 안질에 시달려 광부들은 겨울철 명태가 잡히는 시기에는 광산을 떠나 바닷가에서 2-3개월 동안 임시 체류하면서 명태의 애를 집중적으로 먹은 후에 다시 광산으로 돌아가곤 했다.

명태의 단백질은 성장과 생식에 필요한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해 우리의 인체의 조직을 구성하고, 체액 및 혈액의 중성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특히 비타민A와 나이아신이 풍부해 우리 인체의 피부와 점막형성에 없어서는 안 될 식품이며, 레티놀 성분은 아름다운 피부 및 주름방지에 특출한 효과가 인정돼 어린이 간식과 노인들의 영양식으로 적합하다. 특히 한방에서는 각종 독을 푸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독사, 지네, 광견 독을 해독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명태 애는 한 마리에서 나오는 양이 얼마 되지 않아 신선한 명태가 아니면 자체적으로 녹아 없어지는 현상이 있으며, 명태 애 자체에도 독이 약간 있어 독으로서 독을 제압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대구와 명태국과 매운탕(또는 지리)은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며 대구, 명태구이와 찜류는 가격이 저렴하면서 비린내가 없어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대구와 명태 전류는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고, 김치를 담글 때에 속살을 넣으면 칼슘과 단백질, 유산균이 풍부해진다. 필자가 노르웨이 여행 중 찾은 한국인 주인의 일식집에서 대구 지리를 주문했으나, 주인은 노르웨이 식품위생법상 버리도록 돼있는 대구 애와 곤지를 듬뿍 넣고 요리해주는 동족애(?)를 발휘해준 호의와 그 맛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1957년 사상계에 안수길이 발표한 ‘대구 이야기’란 단편 소설이 있다. 해방 직후 혼란기에 식당을 하고 있는 혜숙이란 여인이 남편의 숙원사업인 제재소를 차려주기 위하여 식당을 폐업하고 친구인 옥련에게 빚을 지게 된다. 제재소에 톱을 설치하고 나왕, 적송 등 재료를 들여 놓은 후 한 달도 못되어 이웃에서 일어난 불로 제재소는 재로 변하고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다보니, 원금 상환은 막막하고 이자마저 값을 수 없게 되자 1500환짜리 ‘대구 한 마리’를 생선 가게에서 외상으로 사서 옥련에게 보내나 되돌려 받게 되자 친구를 원망한다. 대구를 반품하려고 생선가계에 간 혜숙은 700환만 주기로 하고 대구를 물렸다. 옥련은 대구를 되돌려 보낸 사연을 설명하기 위해 혜숙의 집을 찾게 되고, 이때 생선장수는 700환의 외상을 받기 위해 문어귀에서 ‘대구값 남은 건 안 줄 작정이요?’라고 소리친다.

예나 지금이나 대구 한 마리는 훌륭한 선물이 되었다. 한 때는 대구 한 마리에 10여 만 원을 호가하였으나, 오랜 자원조성의 결과 지금은 누구나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됐고, 동해안 명태는 자원 남획 결과 회유하지 않아 원양산 명태를 먹고 있으나, 이 역시 가격이 저렴하다. 서늘한 계절로 접어들고 있고 추석도 머잖다, 보약이 되고 버릴 것 없이 요리도 다양한 대구나 명태(애) 요리를 오늘 저녁 식탁에 올리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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