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7년 마카오에서 일본으로 가던 포르투갈(Portugal) 무역선이 심한 풍랑을 만나 난파되면서 무역선의 선장이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이 최초의  포르투갈이었다고 알려졌으나, 그 뒤 그의 행적이 알려진 바 없어, 학계에서는 1593년 입국한 신부 ‘세스페데스(Sespedes)’가 최초라고 인정하고 있다. 동유럽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같은 지리적 공간을 공유하므로 모든 면에서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특히 스페인어가 포르투갈의 공용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많은데 포르투갈은 고유어가 있다. 물론 양국이 켈트족의 정착부터 시작한 초기 역사는 같지만, 두 국가는 다른 문화를 가진 국가이다. 따라서 두 국가는 동맹보다는 경쟁관계에 가깝다.

포르투갈인들은 1580-1640년 간 자국을 스페인이 통치하면서 받은 온갖 수모를 잊지 않고 있으며, 유로 축구에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기는 한국과 일본의 경기를 연상케 할 만큼 치열하다. ‘에우제비오’와 ‘호날두’는 포르투갈의 축구영웅이다. 더욱이 스페인에 의한 경제적 잠식을 크게 우려하는 것도 비슷하다. 스페인 사람들은 개방적인 성향, 음식, 관습은 모두 지중해식에 가깝다. 스페인은 ‘시에스타’(점심 후 낮잠)를 준수하는 반면, 포르투갈인들은 짧은 점심휴식 시간을 가질 뿐이다. 심지어 투우도 다른 양상인데 스페인 투우가 더 잔인하고 극적이다. 포르투갈에서는 경기장에서 황소를 죽이는 것이 불법이다.

사가(史家)들은 대서양에서 포르투갈의 해양확장은 141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386년 포르투갈 원정대는 ‘카나리아 군도’를 최초로 발견하였다고 교황(클레멘테 6세)에게 최초로 보고하였으나, 1466년 스페인의 강력한 해양 정책으로 포르투갈은 카나리아제도 내주고 말았다. 카나리아 제도의 하나인 ‘라스팔마스’는 오늘날 우리 대서양트롤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며 스페인은 엄청난 바다영토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영토 확장주의 정책을 계속 활발하게 추진하여 1427년에 ‘아조레스 제도(Azores Is.)’의 몇몇 섬들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이 섬에는 1431년 다시 원정대를 파견하여 마을을 세우고 식민화 정책을 수행하였고, 15세기에 이르러서야 포르투갈 해외 영토 확장의 전진기지로 괄목할만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15-16세기 해양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면서 포르투갈은 한때 기니비사우, 동티모르, 마카오, 브라질, 모잠비크, 앙골라, 상투메 프린시페, 카보베르데 등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으나, 브라질 독립 이후 국력이 급격히 쇠퇴해졌으며, 현재는 대서양의 ‘아조레스제도(포르투갈어는 아소르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뿐이다.

아조레스 제도는 9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섬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걸쳐 600km  넘게 길게 늘어져 있어, 1,100만㎢나 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갖고 있다. 아조레스 섬들을 구성하는 섬은 모두 화산섬으로 형성되었는데 피쿠(Pico)섬의 피쿠산 높이가 해발 2,351미터로 포르투갈 전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저에 있는 산의 기저로부터 재면 아조레스제도를 구성하는 섬들은 사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고 하겠다. 약 2천만 년에서 2천5백만 년 전에 대서양의 해저 4,000미터에서 용암이 솟아나기 시작했고, 이것이 산맥을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 섬들이 생겼다. 1427년 항해왕자 ‘엔히크’ 아래에 있는 해군제독 ‘곤살루 벨류(Goncalo Velho)’가 발견했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발견 당시 무인도였던 아조레스 제도에는 1439년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는데, 포르투갈 본토 남부의 알가르브와 알렌테주로부터 주로 이주가 시작되었으며, 프랑스북부와 플랑드르 지방에서도 이주민이 들어왔다. 2000년 기준으로 인구는 24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기후는 온난하고 여름평균기온이 섭씨 22도, 겨울철에도 섭씨 15도 정도로 유럽의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9개 섬 중의 하나인 ‘코르보’섬에서 ‘카르타고’ 화폐가 발견됨으로써 고대에 지중해 세계와 교류가 있었음이 추측된다. 주민의 대부분은 로마카톨릭이며, 주요산업은 어업, 농업, 목축업, 파인애플, 차, 입담배의 산출이 많았다. 특히 이 섬 ‘아조레스’는 포르투갈에 있어 대서양 참치자원이 풍부한 보석이다.

필자는 20여 년 전 이 섬에서 개최된 ‘대서양 참치보존위원회(ICCAT)’에 참석하기 위하여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아조레스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림 같은 섬들이 바다위에 저마다의 왕국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포르투갈은 해양 분할시대를 맞아 본토 이외에 엄청난 크기의 경제수역을 확보하여 참치자원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 당시 미국 수산청 대표는 미국이 태평양과는 달리 대서양에는 왜 눈을 돌리지 않았는지 후회스럽다고 한 말이 새롭다. 우리나라는 1970년 8월9일 이 기구에 가입하였으며, 22개 회원국(아주 2, 미주 5, 구주 4, 아프리카 11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나, 아프리카의 베넹공화국이 탈퇴한 바 있다. UN헌장 또는 FAO에 근거한 수많은 국제 또는 지역 수산기구들이 있으나 ICCAT같이 강력한 자원관리기구도 흔치않다.

최근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지아, 브루나이 등 간에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남사군도(Spratly Is.)를 두고 벌이는 힘겨루기는 수산 및 해저자원에 대한 주권적 또는 배타적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것임은 알고 있다. 일본은 국방백서와 외교청서에 독도는 자기 땅이라고 계속 우기다가, 지난 8월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았다. 올림픽축구도 2대 0으로 완파했다. 그러나 자만심은 금물이다. 60만 수산인 아니 5천만이 독도 수호의 불침번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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