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하계올림픽이 7월 27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에서 205개 참가국에서 1만 6천명의 젊은 건아들이 26개 종목, 302개의 금메달을 놓고 실력을 겨루기 위하여 모였다. 개회식은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을 주제로, 1932년 창단되어 그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고 ‘사이몬 래틀 경’이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PO)’의 테마음악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 화려한 막이 올랐다.

1924년 영국은 제 8회 파리올림픽에 파견한 육상선수 중에 ‘에릭 리델(Eric Liddell 1902-1945)’과 ‘해럴드 에이브러험(Harold Abrahams)’이라는 특별한 두 선수가 있었다. 유대인으로 명문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한 해럴드는 파리 올림픽의 영국 육상선수로 선발되고,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저항으로 금메달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스코틀랜드에서는 중국에서 선교사로 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선교사가 된 에릭이 타고난 기량과 노력으로 역시 영국 육상선수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에릭은 100m 단거리 육상선수로 선발되어 고된 훈련을 소화하고 막상 파리에 와보니 그의 경기일정이 안식일인 일요일에 개최됨을 알고는 감독의 질책과 동료들의 비웃음을 사면서까지 자신은 선교사이므로 일요일에는 경기를 할 수 없다고 결국 경기를 기권하고 말았다.

그러나 400m 경기가 있던 날 그에게 예기치 않은 행운의 기회가 찾아왔다. 400m 경기당일 선수인 동료가 갑작스런 사정으로 경기에 나갈 수 없게 되자 감독은 대타로 에릭에게 대신 출전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10초대에 달리는 100m 단거리 선수인 에릭에게 4배 길이인 400m 경기는 불가능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일요일 경기를 포기한 에릭은 감독과 동료는 물론 조국 영국에 큰 부담을 지고 있는 터라 한 번 해보겠노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다음날 에릭은 트랙으로 걸어가는 도중 마사지사는 쪽지를 주면서 출발선에 들어서기 직전에 그것을 펴보라고 했다. 에릭은 그 경기에서 예상을 깨고 1등으로 들어와 금메달을 받았다. 해럴드 역시 금메달을 획득하여 조국의 요청에 부응했고 영국 육상 역사의 영원한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다. 에릭이 받은 쪽지에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항상 최선을 다하길 바랍니다.”(삼상2:30)라고 성서의 말씀이 적혀 있었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200m까지는 내 힘으로 달렸고, 그 이후는 성경말씀으로 달렸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1981년 영국의 ‘허드슨’ 영화감독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제목을 ‘불의 전차’로 붙이고 영화를 만들어 1981년 제5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각본, 음악, 의상 등 4개 부문에서 오스카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의 테마음악 역시 불의 전차였다. 그리스 전자음악의 대가인 ‘반젤리스’는 ‘윌리엄 블레이크’가 작사한 영국 성공회의 성가인 ‘..이글거리는 불의 활을/ 욕망의 화살을 내게 가져다주오/ 내게 불의 전차를 가져다주오..’예루살렘(Jerusalem)에서 일부를 취하여 불의전차라는 곡‘..끝없이 달리는 전차여/ 고통의 터널을 지나 넌 가야하니까..’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가장 영국적인 음악을 개막식에서 연주한 것은 스포츠에 일생을 건 젊은이들을 소재로 평범한 스포츠 정신에 국한시키지 않고 인간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정신력의 경이를 그리라는 것이었다.

에릭은 올림픽이 끝나자 스코틀랜드에 머물지 않고, 그가 태어났던 중국으로 돌아가 선교사가 되었다. 에릭은 일본인들의 중국 침략이 가까워지자 가족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남아 선교사역을 하다가 붙잡혀 일본인 전쟁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억류기간 중 숨진 사람들을 묻었던 수용소 안에 있는 작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것은 1945년으로 파리 올림픽 이후 21년간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43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금번 런던올림픽에서 단지 1초가 영겁의 시간(신아람)으로 둔갑하고, 푸른 깃발과 흰 깃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는 코미디 같은 오심(조준호)으로 지난 4년간의 피와 땀이 분루(憤淚)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 하에서 지난 7월 31일 자정(한국시간) 벌어진 유도 81Kg 이하 급에서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김재남 선수는 우수한 기술 및 정신력을 바탕으로 금메달을 조국에 바치는 쾌거를 이룩했다. 어깨의 쇄골은 밥 먹듯이 탈골되고, 팔꿈치의 인대는 파열되고, 상대편 선수를 잡아야할 손가락 역시 인대 파열로 진통제를 먹고, 4년 전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 통한의 패배를 안겨주었던 올레 비쇼프(독일)와 리턴 매치(재대결)의 운명을 극복해야 할 상황이 재연되었다. 그는 32강전부터 강한 복병들을 만나 차례로 쓰러뜨리고 올라와 그 힘은 한계점에 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4년 전의 김재범은 아니었다. 죽기 살기로가 아닌 죽기로의 투혼으로 유효를 연거푸 따낸 김재범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승리의 신은 그에게 안겼다. 이로써 김재범은 4년 전의 빚을 청산했고, 한국유도로는 이원희(용인대 교수)에 이에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아선수권)을 달성한 두 번째의 영광의 선수가 되었다.

한편 국내에서 늘 김재범에 가려 번번이 국제대회 참가가 봉쇄된 체 우승 경력도 전무한 송대남은 한 번에 스테이크 13인분을 먹는 방법으로 체급을 올리고, 90kg이하 급에서 일본, 러시아 및 체코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33살의 노장 투혼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것 역시 우리나라 유도사에 길이 남을 족적들이다. 우리도 ‘한국판 불의 전차’를 작곡하고, 영화를 제작하여 이들 영웅들의 활동을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세계경기 불황으로 고전하는 산업의 역군들과 이마에 주름살 깊게 파인 어업인들을 위해 누군가 주먹을 불끈 쥐어야 온당치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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