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12일 중국 쓰촨성(四川省)의 성도(省都)인 청두(成都)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갔다. 40년 지기 가족들과 오래 전부터 계획한 구채구(九寨溝 Jiuzhaigou)를 관광하기 위해서였다. 한라산 등반경험도 없는 필자로서는 해발 4000여 미터에 가는 만큼 고산병이 우려되어 공항 약국에서 약품을 구입한 후 출발 수속을 기다렸으나 계속 지연되다가 청두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결항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언제 다시갈 수 있을지 몰라 약국에서 환불한 후 허탈한 마음으로 귀가한지 4년이 훌쩍 흐른 지난 4월 12일 지진복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청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청두는 분지로 다습하며 주변 인구를 포함하여 약 10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약칭은 룽(蓉)이며 서남지대의 중공업기지이다. 현재는 쓰촨성의 행정, 경제, 교통, 문화의 중심지이다. 전국시대로부터 만들어진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다. 이후 삼국시대(蜀,吳,魏)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나라를 세웠던 곳이다. 다음날 7시간(2008년에는 10시간)이 소요된다는 구채구 버스여정을 앞두고 제갈량을 모신다는 무후사(武候祠)에 들렀다. 무후사의 당초 이름은 한소열(漢昭烈)묘로 유비와 제갈량의 묘가 있고, 제사를 모시는 사당으로 1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 유비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고 생사를 같이한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를 비롯하여 오호장군이었던 황충(黃忠)과 조자룡(趙子龍) 등의 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유비 상(象)옆은 빈 공간으로 남아 있고, 그 옆에만 유비 손자의 상이 있었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빈곳은 유비의 아들로 2대 황제였던 유선(劉禪)의 상이 세워져 있었으나 닭싸움(鬪鷄)과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조조(曹操)가 세운 위(魏)의 등예의 군대에 항복한 수치스런 황제라 하여 그 상을 철거했고, 끝까지 아버지의 항복을 만류하다가 자결한 유비의 손자(劉諶)상은 그대로 두었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충절을 기리는 마음은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가 보다.

중국 외교의 상징인 판다곰의 고향 청두를 뒤로 하고 구채구를 향하는 도중 2008년 이곳을 덮친 대지진의 상흔이 7시간 내내 이어졌다. 300년을 주기로 왔다는 지진은 산을 통째로 옮겨 놓았고 무수한 사연이 있는 옛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어느 곳은 자동차와 함께 매몰된 곳이 있고, 마을도 통째로 묻혀 먼 훗날에나 들려올 이야기로 남겨둔 곳이 있다고 하니 기도하는 마음이다. 구채구는 쓰촨성 서북부 아바창족의 자치구로 원래의 명칭은 쑹판현이었으나 1997년 9개의 장족마을이 있다 하여 구채구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장족들은 항복을 모르는 전사족(戰士族)으로 원래는 티베트를 근거로 살았으나 라마교 종파의 분리로 험준한 이곳으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야크와 염소를 방목하고 옥수수, 밀, 유채, 잎담배 등을 주업으로 어렵게 생활했으나 1992년 구채구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Jiuzhaigou Valley Scenic and Historic Interest Area)으로 지정되고 관광객이 몰려오자 지금은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한다.

구채구에는 110개의 호수와 13개의 폭포가 있다. 티베트어로 웅장하다는 뜻의 낙일랑(落日郞)폭포를 위시하여 오채(五彩)못, 폭이 310미터가 넘는 진주탄(眞珠灘) 등의 물빛은 칼슘과 석회 그리고 각종 수초와 영양염류 등이 햇빛을 받아 형용할 수 없는 오색영롱한 쪽빛을 발하고 있어 조물주가 빚어낸 지상 최고의 걸작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캐나다의 석회질 호수가 아름답다 해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이 호수를 한층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것은 붉은색과 금빛으로 보이는 비단잉어색조를 띤 냉수성 물고기들의 군무(群舞)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어디에도 이 물고기에 대한 기록이나 설명이 없어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애석할 뿐이었으나, 그래도 또 한 번 가야 할 명분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은 괜찮다. 해발 3800-4200미터에 위치한 험준한 산악 속의 원시적인 자연 그리고 140여 종의 조류가 만들어내는 천연 오케스트라와 티베트의 라사로 향하는 노파(염소와 함께)의 천당을 향한 고난의 오채투지를 그린 장족의 민속공연은 장관을 넘어 그 잔영(殘影)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청두는 도교(道敎)의 발원지로 큰 풍선을 타고 공중 높이 올라가면 태극팔괘의 모양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제갈공명이 즐겨 사용한 진법의 하나이기도 하다. 청두는 두부(豆腐)의 본 고장으로 130여 가지의 요리를 선보인다고 하며 우리나라에도 일반화된 마파두부의 원조도 청도라고 한다. 그러나 내륙지로 물동량의 수송이 원활하지 않아 모든 먹거리가 부족한 것이 아쉽다. 식탁에 매끼 물고기가 올라오는데 한결같이 잉어 한 종류이다. 잉어는 이곳에서는 모든 요리의 주재료라고 한다. 해산어는 찾아볼 수가 없고, 확인한 바로는 청두에 일본식당이 두 세 곳 있는데 이곳에서는 해산어 요리와 회를 먹을 수 있는데 선도가 떨어진 회 일인분에 원화로 환산하여 20만원으로 부자가 아니고는 먹을 수가 없다고 하나 그 수요는 점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송수단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어 머지않은 장래에 해산어가 원활이 공급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하니 수출 잠재력이 크다.

쓰촨성의 인구는 곧 1억 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하고, 최근 중국인들은 자국 인구를 13억이 아니라 15억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고 한다. 1970년 대 초 우리는 수산물을 전략수출 품목으로 정하고 내국인은 새우 머리만 먹도록 강제하고 몸통은 전부 수출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중국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한·중 FTA로 수산물 품귀현상의 악몽(?)이 되살아나지나 않을지, 기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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